연구소 3층에는 유전실험실이 마련되었고 4층에는 생식실험실이 설치되었다. 특히 생식실험실에는 세계보건기구 본부로부터 기증받은 기자재가 설치되어 국내 최초로 방사면역측정법(放射免疫測定法)(radioimmuno assay)의 실시가 가능하게 되었다.
WHO, UNFPA, 미국인구협회 등의 지원으로 인구의학연구소는 가족계획과 생식의학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것으로 자부하고 있다. 가정보건상담실은 가족계획과 모자보건(母子保健)에 관한 계몽교육, 남성과 여성에 대한 피임시술 및 추후관리, 의과대학생에 대한 교육, 수태조절(受胎調節)에 관련된 분야의 기초 및 임상연구 등을 실시해 왔다. 81년 1월에는 서울대학교 신축병원의 산부인과 및 비뇨기과 외래로 자리를 옮겨 수태조절(受胎調節)클리닉과 불임증(不姙症) 클리닉으로 분리·운영됨으로써 불임증에 관한 상담과 진료기능을 했다.
생식실험실은 임상생화학실험실, 호르몬실험실 및 유전학실험실로 구성되어 있다. 국제적인 연구활동을 위하여 많은 기기가 도입되었고 혈구분류기(血球分類機((Cell Sorter) 등 여러 가지 첨단기기가 가동되고 있다.
또한 인구의학연구소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수집하고 국제적 교류를 증진키 위하여 빈번하게 세미나와 워크샵을 개최한 바 있었으며, 매년 의과대학생을 대상으로 인간생식 및 가족계획에 관한 합동강의를 실시하였고, 보건전문인을 대상으로 불임시술 등에 관한 교육훈련활동을 계속하기도 하였다.
1979년에는 인구의학연구소가 의과대학부설 법정연구소로 되었으며 82년에는 서울대학교 직할연구소로 승격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초대 소장이었던 나의 뒤를 이어 의과대학장이던 김상인(金相仁) 교수가 2대 소장으로 활약하였으며, 현재는 산부인과교수인 장윤석(張潤錫) 박사가 소장직을 맡고 있다.
④대한가족계획협회(大韓家族計劃協會)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구성부분으로 1962년에 가족계획사업이 국책으로 채택되었는데 이보다 앞서 대한가족계획협회는 5·16 전에 이미 발족했었다. 보건소망을 활용한 가족계획사업이 진행되고 대한가족계획협회가 민간차원에서 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니, 그 결과는 괄목할 만 하였다. 대한가족계획협회는 양재모(梁在謨), 이종진(李宗珍) 박사 등이 중심이 되어 가족계획분야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런던에 본부를 둔 국제가족계획연맹(International Planned Parenthood Federation, IPPF)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우리나라를 가장 우수한 가족계획 시범국가로 만드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현재는 김용완(金容完) 박사가 회장으로서 맹활약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한때 가족계획협회의 의사(醫事)위원장, 기획의원장, 부회장 등의 직책을 맡았다. 또한 72년 4월부터 76년 4월까지 4년간 IPPF의 중앙의사위원회(醫師委員會) 위원 및 연구 평가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어 런던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도시에서 개최되는 회의에 참석하였다. 당시 서울의대 학장직을 맡고 있었던 관계로 가끔 학원문제에 부딪치게 되어 회의에 참석할 수 없게 된 일도 있었다. 참석할 수 없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 상당히 머리를 썼던 일이 생각난다.
또한 76년 12월부터 81년 12월까지는 가족계획 국내기술자문단(國內技術諮問團)(In-Country Technical Assistance Misson, ICTAM)의 단장직을 맡기도 하였다. 이 기구는 우리나라가 가족계획의 모범국가로 되었으니, 이제는 외국인사의 도움이 필요치 않다고 판단되어 모든 것을 국내 인사들이 추진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처음 2년간은 당시 가족계획연구원의 부원장이던 김용완(金容完) 박사가 단장 직을 맡았다.
그 후 76년 말에 내가 인계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산하에 기술자문위원회가 구성되어 박찬무(朴贊武) 박사가 위원장으로 활약하였다. 또한 미국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김한경(金漢卿) 여사가 총무로서 많은 애를 쓰기도 하였다. 현장에 가서 실정을 살피기도 하였고 심포지엄이나 워크숍을 개최하여 가족계획에 관한 제반문제를 토의하기도 하였다. 또한 많은 인사들이 참여하여 연구논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는데 그 논문집의 크기가 대단하였다.
처음에는 UNFPA에서 자금을 댔는데 연차적으로 국고지원분이 늘어나다가 80년경에는 완전히 국고에 의하여 이 사업이 추진되었다. 81년 7월에 박찬무(朴贊武) 박사가 인구보건연구원장에 취임한 것을 계기로 이 사업은 동 연구원에서 흡수하고 원장인 박(朴) 박사가 모든 것을 관장하게 되었다. 김한경(金漢卿) 여사도 인구보건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겨 수석연구원으로서 이 사업을 계속하였다.
⑤ 생각나는 일들
지난 39여 년 동안 우리나라 가족계획이 걸어오는 과정에서 나 자신도 여러 가지 경험을 하였는데 그 중 몇 가지만을 적어본다.
M. C. Balfour 박사의 충고 : 앞서 적은 바와 같이 Balfour박사는 분명히 우리나라 가족계획의 은인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그는 여러모로 존경받을 만한 분이었다. M.I.T를 졸업한 후에 하버드의대에서 다시 의학을 공부한 분이며 인도에서도 많은 활약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박식도 유명하지만 그의 인격 또한 훌륭하였다. 가끔 자기의 성장과정에 관하여 이야기해 주기도 하였다. 그의 신조 중 하나가 빚지지 말라는 것이었다. 결혼할 때 200불의 빚을 졌는데 이 돈을 갚는 데 10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함께 학회에 참석할 경우도 여러 번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집안의 할아버지같이 돌봐 주곤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족계획은 절대적인 과제라면서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최소한도로 보사부에 가족계획국을 두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하였다.
대학의 가족계획교육 : 가족계획의 중요성에 대하여는 더 이상 설명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학교교육 특히 의과대학교육에서 가족계획이 얼마나 반영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선뜻 긍정적인 답변이 나오지 않는다. 1970년 4월에 나는 서울의대학장으로 취임하였는데, 최우선 과제 중의 하나가 교육과정(敎育課程) 개편이었다.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교욱과정(敎育課程)이라야 하는데 좀처럼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인간생식 및 가족계획 과목을 넣으려고 애썼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하였지만 좀처럼 실현되지 않았다. 상당한 시일이 지난 후에 소위 block lecture에 이 과목을 삽입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과목의 설정은 가족계획분야에 많은 자극을 주었다.
IUD(Intra-Uterine Devices, 자궁내 장치) 방영(放映) : 성동구(城東區) 연구사업의 내용의 하나가 가족계획(家族計劃)에 관한 계몽이었다. 이를 위해 IUD를 텔레비전을 통하여 소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일이 쉽지는 않았다.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하였지만 방영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런데 이 사실이 의외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전 세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국제회의에서도 이 사실은 여러 차례 보고되었다. 많은 나라에서 시도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나라가 가족계획의 모범국가라는 평가를 받는 데에도 이 사실은 크게 기여했던 것이 분명하다.
'미네소타보건대학원'에서 있었던 일 : 1955년에 미네소타보건대학원에 입학하여 MPH과정을 밟았는데 셋째학기에서는 가족계획(家族計劃)실습 과목이 있었다. 미니애 폴리스시내의 어떤 교회 지하층에 있던 가족계획 클리닉으로 가서 '다이어프램(diaphragm)'을 삽입하는 실습을 하였다. 5명의 부인에게 삽입한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는 IUD가 없었고 '다이어프램'이 있었을 뿐인데 크기가 달라서 적절한 것을 선정하는데 머리를 써야 했다. 가족계획분야를 공부하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던 관계로 이 실습을 일과성(一過性)인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물론이다. 가족계획과는 일찍부터 인연이 있었던 게 아니냐고 혼자서 고소(苦笑)할 때도 있다.
앞으로의 과제 : 현재와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우리나라 인구가 2000년에 4천 6백 82만 명, 2020년에는 5천 19만 명이 될 것이며 그 이후부터 정체될 것으로 추계된다. 근래에 가족계획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둔화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이 분야에서 해야 할 일이 한없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에 근본목표가 있는 것이고 보면 사회적인 문화운동(文化運動(으로서의 가족계획은 언제나 계속되어야 한다. 예컨대 당장 앞에 다가오는 노령인구문제 등 인구 구성내용의 질적 변화에서 파생되는 사회문제도 가족계획이 해결해야 할 대표적 과제의 하나라고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