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족계획(家族計劃)이 국책으로 채택된 것은 1962년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인구증가율은 3% 전후였으며 인구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에 대하여 점차 인식을 새롭게 했던 것이다. 정부차원에서 이 국책을 수행하기로 하기는 하였지만 여러 가지 여건이 미비된 상태였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족계획(家族計劃)이 국책으로 채택된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뜻을 지니는 것이며 지극히 현명한 처사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겪은 경험을 토대로 하여 가족계획연구(家族計劃硏究)에 관련되는 몇 가지를 적어본다.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뜻있는 일을 한다고 믿는 데서 오는 긍지도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가족계획에 관한 연구가 인생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① 성동구(城東區)프로젝트의 시작
1962년의 늦은 가을의 어느 날, 미국인구협회(美國人口協會)(Population Council in New York)에서 미국인 한 분이 찾아왔다. 당시 나는 서울의대 조교수였다. Marshal C. Belfour박사라고 하는 이 분은 인구문제의 중요성을 설명하였다. 그는 6·25동란 몇 년 후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바 있었는데, 그때 이미 인구문제가 한국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로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고 한다.
인구억제사업이 정부 주도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직제에서도 그 의지가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학문하는 사람도 연구를 통하여 가족계획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학(疫學)을 공부하는 입장이어서 인구문제와는 거리가 있다고 하였더니 역학이라는 단어를 분석해 보라고 한다. 역학 즉 'epidemiology' 란 인구에 관한 학문이라는 뜻이 아니냐고 한다(epi : on, ~에 관한 · demos : population, 인구 · ology : study, 학문).
학자로서 나라를 돕는 가장 가까운 길의 하나가 가족계획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공헌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그후 두 차례 다시 만나서 결국 이 분야를 공부하기로 작심했다. 당시 연세대학교의 양재모(梁在謨) 교수가 이미 농촌인구에 대한 연구를 실시하기로 되어 있었으며 나에게는 도시인구에 대한 연구를 하도록 권했다.
연구에 대한 설계를 위해서 다른 나라의 실정을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으로 1963년 8월부터 9월에 걸쳐 1개월 남짓 인도, 대만, 일본을 방문하였다. 서울대 사회학 교수이던 이만갑(李萬甲) 박사와 함께 갔다. 가족계획연구(家族計劃硏究)나 사업(事業)이 사회학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데 대하여는 설명할 나위가 없다.
인도에서는 가족계획 시범센터를 시찰했고, 대만에서는 대만성과 '미시간'대학이 공동으로 실시하고 있는 연구사업을 관찰했다. 일본에서는 몇몇 인구학자들을 만났다.
귀국 후 연구설계에 착수했다. 박향종(朴享鐘) (현 인제대학교 부총장), 고응린(高應麟) (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장), 구도서(具燾書) (당시 성동구 보건소장, 전 경희대학교 교수) 박사 등으로 연구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이만갑(李萬甲), 이해영(李海英) (작고) 두 분 교수를 고문으로 모셨다.
1964년 2월에는 '도시 인구조절(人口調節)에 관한 연구'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보건사회부, 서울시, 대한가족계획협회의 협조를 얻어 미국인구협회와 계약이 체결된 것이다.
②연구사업(硏究事業)의 내용(內容)
성동구(城東區)를 대상으로 연구사업 즉 Sungdong Gu Action0Research Project는 사전조사(事前調査)(Pre-treatment Status Survey)와 본 연구로 나눠진다. 사전조사는 1964년 4월부터 6월에 걸쳐서 실시되었다. 사전조사가 실시되기 전에 대상자의 수와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기초조사가 2월부터 3월에 걸쳐서 시행되었다. 기초조사를 통하여 연구지역에는 44,923명의 가임부인(可姙婦人)이 있음이 판명되었다. 가임부인은 20~44세의 유배우(有配偶)부인을 말한다. 사전조사는 이들 중에서 추출된 표본을 대상으로 실시되었으며 그 결과는 앞으로 있을 사후조사와 종합평가에 대한 기본자료가 되는 것이다. 사전조사 대상자로는 가임부인 중 3,204명이 추출되었다.
연구사업은 특정한 자극을 투여하여 그 효과를 측정하는 것을 내용으로 했다. 자극으로는 '매스미디오', '우편물 배포 및 매스미디어'. '가정방문 및 매스미디어', '집단계몽 및 매스미디어'의 네 가지가 적용되었다. 성동구 지역에는 3,900여 반(班)이 있었는데 반단위(班單位)로 자극이 투여되었다.
본 연구는 1966년 6월까지 2년간 계속되었다. 그 후 7월에서 8월에 걸쳐서 사후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결과를 종합적으로 정리 분석하여 도시부인을 대상으로 하는 가족계획사업을 실시하는 데 도움을 주려는 목적으로 사후조사가 시행되었다. 실제로 가족계획사업을 실시하면서 연구를 하는 소위 "Action ― Research "를 소개하는 데에도 큰 뜻이 있었다.
도시인구(都市人口)의 경우에는 인구밀도, 주택, 인구이동, 직업, 생활수준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는 까닭에 연구사업에 있어서도 변수가 많게 된다. 성동구(城東區) 프로젝트가 66년에는 서울시 9개구로 확대되었다. 즉 서울시 전체를 대상으로 하게 되었으며, 73년까지 계속되었다.
본 연구사업을 위하여 함께 고생한 분으로는 앞서 적은 5교수 외에도 김태용(金泰龍)(현재 미국거주), 이용욱(李容旭)(현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박순영(朴淳永)(현 경희대 교수), 강길원(姜吉遠)(현재 미국거주), 홍재웅(洪在雄)(현 인하대 교수), 윤봉자(尹鳳子)(현 서울의대 교수), 임재은(任在恩)(현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안윤옥(安允玉)(현 서울의대 교수), 박찬무(朴贊武)(전 국립의료원장)박사 등 여러 교수를 비롯하여 많은 연구원들이 있었다.
또한 미시간 대학의 저명한 인구학자인 R, Freedman, J. Y. Takeshita 교수가 수시로 내한하여 자문을 해주었으며 미국인구협회의 동아시아 대표 S. M. Keeny, 주한대표 Paul Hartman, John A. Ross, Walter B. Watson, George C. Worth(한국명 오천혜(吳天惠))씨 등 여러 인사가 도움을 주었따. 한편으로는 저명한 학자들인 Frank W. Notestein, Bernard Berelson, Parker Mauldin, Hugo Hoogenboom, Dudley Kirk, Vincent H. Whitney, Clifford A. Pease, Clarkson Hill, R. K. Anderson, Robert G, Castadot 씨 등 여러분으로부터 조언과 격려를 받기도 하였다.
도시연구 조절에 관한 성동구(城東區)연구사업이 연세대학교의 농촌인구 조절에 관한 고양군(高陽郡) 연구사업과 더불어 이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자부한다. 사실상 이 연구사업들은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많은 대학에서 연구보고서의 내용을 인용하기도 했다.
③ 인구의학연구소(人口醫學硏究所)의 탄생
성동구(城東區)연구사업을 관장하던 '도시인구연구회'는 72년 4월 28일, 서울의대 인구의학연구소로 발전하였다. 구 의과대학건물 4층에 연구소본부를 두었고 생식실험실(生殖實驗室)도 설치하였다.
1972년부터 74년까지는 성동구(城東區) 연구사업을 마무리 짓는 일이 주요업무였다. 74년에 발간된 "Ten Years of Urban Population Studies in Korea"라는 책자가 이 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74년 3월에는 UNFPA(유엔인구활동기금, UN Fund for Population Activities)의 Rafael M. Salas 사무총장이 내방하여 격려해 주었고 같은 해 10월에는 세계보건기구 본부로부터 인간생식협동연구(人間生殖協同硏究)기관으로 지정받았다. 75년 3월에는 세계보건기구 본부의 인간생식연구 책임자인 A. Kessler 박사 등이 내방하여 생식실험실을 강화하도록 결정하였다. 그 결과 20만불 상당의 기자재 기증이 약속되었다.
1975년에는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특지로 가정보건상담실(家庭保健相談室)로 건물이 신축되었다. 가족계획에 대한 박(朴)대통령의 관심은 대단했었다. 76년에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건물인 구(舊) 약학대학(藥學大學) 1호관으로 인구의학연구소가 이전하였다. 9월 9일에 이전 개소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개소식에는 윤천주(尹天柱) 서울대총장, 신현확(申鉉碻) 보사부장관, 조성옥(趙成鈺) 문교부차관, 맥스(Henry Maggs) UNDP 주한대표, 랜킨(A. M. Rankin) WHO 주한대표 등 많은 내빈이 참석하였다. 세계보건기구로부터도 전문가들이 참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