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 병원으로 (14회)

보사부 장관 직에서 물러나 1990년 하와이에 대학 객원교수로 있을 때 곤넬라 학장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제퍼슨을 방문하게 되었다.

비행장에 도착할 때부터 계속 환대를 받았으며 여러 번의 만찬에 만나고 싶은 많은 분들을 초대하였다. 참으로 인정이 많고 우리 한국과 상통한 점이 있는 이태리식 우정에 감명을 받았다. 또한 그 기회에 외국과의 의학교류,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와의 교류에 관한 의견을 브럭커 총장 및 이사회 간부들과 나눌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경제와 공업기술 분야에서는 국제교류가 대단히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비해 의학분야는 다소 침체되고 있었다.

국제협력을 활성화 하는 것이 의학의 기본목적에 부합된다고 믿고 있었던 토마스 제퍼슨 대학의, 지도부는 마침내 이사회의 자문조직으로 FAB라는 기구를 구성하기로 하고 이사장, 총장 그리고 외부인사로서는 스웨덴의 저명한 사업가인 본드 공작, 세계보건기구의 막크화덴 박사, 미국의 저명한 학자인 웨스트 하우스 교수, 남미 베네주엘라의 전 보사부장관 폴리도 박사와 나를 선임했으며 1992년 4월 피라델피아에서 첫 회의를 개최했다.

나는 제퍼슨에 외국출신 교수가 많은 것에 우선 놀랐고, 세계에서 유명한 학자, 임상연구자 등 최고급 두뇌가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돈을 아끼지 않는 최고 수준의 시설도 매우 인상적이어서 앞으로 빛나는 연구업적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체 환자의 5%가 외국인이라는 시설도 제퍼슨의 국제적인 명성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이 자문위원회에서는 의과대학교육에서부터 학생들과 의사들을 제대로 새로운 국제적 환경에 적응시킨다는 취지에서 3~4학년 때에 외국연수를 할 수 있는 과정을 만드는 문제, 외국에서 가능한 한 많은 교수요원들을 초청하여 공동연구 또는 연수를 받도록 한다는 등 앞을 내다보는 국제협력 방안에 대한 제안 등이 토의되었다.

또 이 위원회에 필라델피아의 사업가인 블랙 이사가 100만 불을 기증하여 국제의학상을 제정했는데, 이를 통해 미국사회의 저력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위원회에ㅐ 들기도 했다. 이 위원회에 대해 학교 전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었다.

제퍼슨대학에는 옛날에 비해 새로운 고층건물이 늘어난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제퍼슨에서 공부했을 때 인공심폐기를 미국에서 제일 먼저 제작해서 심장수술을 가능케 한 기본 박사를 기념하는 새로운 병동과 전 총장의 이름을 딴 블름리 기초과학관 등은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브란스 병원으로

약 3년 6개월간의 미국유학을 마치고 한국동란으로 인한 극심한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 있던 조국에 돌아온 것은 1957년 11월이었다.

대학에서 일하고자 하는 것이 자연스런 목표였지만 뚜렷하게 결정된 것은 없었다. 그 당시 신경외과를 미국에서 전공한 사람은 없었기에 막연히 잘 될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화이트리 박사의 친한 친구이며, 미국 선교의사로서 대구 동산의원과 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던 스커트 박사가 친절하게도 세브란스 병원에 나를 추천하는 편지를 보내주었다.

▲ 서울역앞 세브란스병원 [출처 ; 세브란스병원]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당시에도 의학계에는 학연이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자기 대학 졸업생이 그 대학 교수요원이 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타 대학 출신이 자리를 얻는 다는 것은 예외에 속한다고 볼 수 있었다.

따라서 나의 경우에는 서울대학교에서 자리를 구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었겠지만 당시 서울의대에는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신경외과학을 연수하고 돌아온 심보성 교수가 있었던 관계로 새로운 과를 창설해서 미국에서 얻은 기술과 지식을 십분 활용하고 싶었던 나로서는 다른 대학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는 신경외과 의사가 없음을 알게 되었고, 당시의 손창환 보사부장관의 추천으로 연세대병원과 접촉하게 되었다. 손 장관은 장관 재직 시에도 안국동에 덕수병원(德壽病院)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는데, 훗날 내가 그곳을 빌려서 약 5년간 안국병원(安國病院)을 개설 운영하기도 한 것을 비롯하여 인연이 깊은 분이다.

그 후 자유당이 무너지면서 국무위원의 한 사람으로서의 책임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기도 했으니 애석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정치를 통감하게 된다.

연세대학교의 의무담당 부총장이었던 김오선 선생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일요일 아침에 면접을 받은 후 남대문교회에 가서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며칠 후에 강사대우로 임명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강사대우라는 직급은 기대 이하였다. 특히 미국에 남아있었더라도 조교수 정도의 직급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되어 실망이 컸다.

그러나 서울대 출신의 나를 받아주는 아량과 학교발전을 위한 넓은 시야를 가지신 김오선 부총장, 조동수 학장과 같은 분들의 결정을 고맙게 생각하게 되었고, 직급자체보다는 우선 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연세대에 가기로 결정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때의 결심을 참으로 잘한 일이었다.

외과 과장이었던 민광식 교수는 온화하고 자상한 학자형의 외과의사로서 미국식의 새로운 외과학을 우리나라에 도입하고 발전시켜 나갔던 분으로 사고의 폭과 시야가 넓은 분이어서 함께 일하기가 쉬웠다. 더욱이 신경외과에 대한 이해와 협조가 퍽 원만하여서 나로서는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 당시의 세브란스병원은 서울역 앞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6.25동란의 피해에서 겨우 회복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어려움이 많았다. 외래진찰실도 협소하여 밀려드는 환자로 메워져 있었고 조용하게 환자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충분치 않았다.

아무리 궁리해보아도 신경외과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방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결국 외래건물 2층에 있는 화장실을 폐쇄하고 이를 개수하여 사용할 수밖에 없어서 병원당국을 설득하여 좁으나마 진찰실을 얻는데 성공했다. 훗날에 “연세의대 신경외과는 화장실에 시작되었다.”라는 일화가 남게 된 이유도 이런 사정에서 비롯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