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Kim) 부사장과 일하면서 느끼는 점이 바로 미국인의 정신이다. 미국인들은 청교도정신을 바탕으로 한 건국정신이 의식 속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고 생각한다. 모든 정책이 인간을 중심으로 제정되었다. 비록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미국이 강대국이 된 이유도 그런 탄탄한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발전해오며 가장 중요한 경제의 초석이 된 것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의 국민성은 청교도 정신과 프론티어 정신이 근간을 이룬다고 본다. 미국의 경제 역시 신용을 중심으로 해서 발전해온 점은 근본적으로 기독교의 윤리에 근거한다고 생각한다.
<Forbes> 잡지가 매번 미국의 부자 리스트를 공개해도 사람들이 부자에 대해 호의적이며 긍정적으로 수용한다. 흔히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라는 말은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하는 뜻으로 쓰이는 용어다. 이 말은 서구사회 상류층의 의식과 행동을 지탱해온 정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귀족으로 정당하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명예(노블리스)’ 만큼 ‘의무(오블리제)’를 다해야 한다는 귀족 가문의 가훈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사회에서 빌 게이츠를 비롯한 많은 부유층 인사들이 사회를 위해 거금을 쾌척하는 것을 기사로 보면서 미국인의 정신에 깊이 뿌리박은 종교적 도덕심이 있는 한 미국 사회는 강건한 경제 대국으로 오랜 세월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회사 QMD가 최초로 거래를 하게 된 것은 역시 한국이었다.
PVC와 인조 피혁을 개발해 미국에 수출 길을 찾고 있던 삼영화학 무역담당 이사였던 친구 이강광 군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회사 제품을 보낼 테니 미국 시장에 한번 팔아봐다오.”
그리고는 화물 컨테이너에 가방 샘플을 수십 개씩 카탈로그와 함께 보내왔다. 이것이 무역구국에 나설 내 첫 수출품이 되었다. 하지만 가방 샘플은 그런대로 구색은 갖추었지만 손잡이가 허술해 보였다. 파트너인 킴 (Kim) 부사장은 여행가방 세트 샘플 다섯 개를 가지고 나갔다.
“일단 뉴욕의 메이시(Macy)백화점을 먼저 공략해보겠습니다.”
다행히 세계 최대의 메이시백화점에서는 관심을 보여 구매했다. 그래서 삼영화학에 제작을 의뢰해 5만 개를 납품하게 되었다.
우리 회사가 최초로 거래에 성공하는 케이스가 되었고, 수출로 인한 한국의 경제를 도울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비록 아버님의 유업을 직접 물려받지는 않았지만 무역구국 정신은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어린아이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제 꿈꾸던 길로 접어들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딘 킴 (Kim) 부사장은 캔사스시티에 본사가 있는 TWA(Trans World Airlines)사로 가서 샘플을 보여주고 다양한 용도에 대한 설명을 했다. 내가 유학생으로 올 때 샌프란시스코에서 캔사스시티까지 탔던 첫 국내선이 TWA였다. 미국에서의 시작을 열어준 인연 있는 항공사였다.
TWA사가 사용하던 여행 가방은 천에 나일론을 입힌 제품이어서 쉽게 찢어지고, 싸구려처럼 보였다. 그래서 인조피혁으로 만들면 내구성도 있고 보기에도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했는데 TWA사에서 받아들였다.
첫 수주에 성공하게 되고, TWA 사는 여행 패키지로 승객들에게 가방을 나눠주었다. 회사에 거래실적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세일즈에 임하자 여러 거래처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서울 상도동에 가방 공장을 세워 공장직영으로 여행가방 세트를 제작하기에 이르렸다. 또한 뉴욕에서 열린 가방쇼에 부스를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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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MD KOREA 최초 가방 공장 부친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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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처음 갔을 때, 박람회에서 왕골 슬리퍼를 사며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제품이 너무나 초라해 가난한 조국의 모습에 서글퍼했던 생각이 들어 적극적으로 여러 바이어들에게 한국산 제품을 설명했다. 고객들도 관심을 보였다. 그 결과 여러 항공사에도 가방을 납품하게 되었다.
어느 날 킴(Kim) 부사장이 전화를 받고 나서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나는 직감적으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느꼈다.
“메이시 백화점에서 불량품에 대해 클레임을 걸었어요. 아무래도 직접 가 봐야겠습니다.”
우리는 메이시 백화점 영업실을 찾았다. 담당 영업부장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불량품 제보가 많이 들어옵니다. 반품을 다 받아주고 수선을 해주든지 아니면 새 제품으로 납품을 하지 않는다면 거래는 더 이상 할 수 없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제 시작 단계에서 무너지나?’
두려움이 몰려왔다. 우리는 반품된 여행가방 세트를 점검했다. 영업부장의 지적대로 주로 지퍼와 손잡이의 고정핀(rivet)이 느슨했다.
불량 부품은 즉시 교체하고 완제품에 더 이상 하자가 생기지 않도록 제조에 만전을 기했다. 이후로는 클레임이 들어오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