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매업을 통해 얻은 자본으로 오랜 숙원이었던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아버님의 유업이었고, 필생의 화두인 ‘무역구국’에 운명처럼 이끌렸다. 안정된 소매업 대신 리스크가 있는 무역업을 하고자 했던 것은 가업 이자 바로 꿈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버님과 내 삶의 이념이었던 무역구국은 소명처럼 가슴에 남아있었기에 소매업에 만족할 수 없었고 늘 소망했던 무역업을 시작하려 한 것이다.
1970년에 QMD Inti C«p.(Quality Merchandize Direct International Coiperation)을 설립했다. ‘소비자에게 좋은 품질의 제품을 직접 전하는 회사’ 라는 취지였다.
처음에는 국제무역회사로 출발해, 철제 가정용품제조업을 겸한 회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나는 회사를 설립하고 신문에 사업 파트너를 구한다는 광고를 냈다. 그 광고를 보고 온 미국인이 뉴요커인 킴 버핑턴(Kim Buffington)이다. 영어 표기로 우리나라 김 씨 같은 이름을 가진 그는 공군에서 갓 제대한 장교 출신의 멋진 청년이었다. 군인다운 패기와 진실한 눈매가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그의 첫 질문이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대뜸 물었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마치 케네디 대통령의 유명한 취임 연설에서 “국민 여러분, 조국이 내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내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십시오.”를 연상케 하는 질문이었다.
대부분의 구직자들은 “돈은 얼마를 주는가?” “직책은 무엇인가?” 그런 것에 더 관심을 가지고 묻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는 느낌이 크게 달랐고 그런 점이 맘에 들었다.
“월급을 적게 받아도 자기 일처럼 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네. 회사를 맡아 키워줄 그런 파트너 말일세.”
사람을 쓰는 경우에 나는 가장 가치를 두는 것이 바로 인성에 대한 부분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해관계에 관심을 많이 두는 편이며, 자신이 손해 본다는 생각이 들면 금세 마음이 변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인간을 키우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좋은 인성이란 이해관계를 따지기보다는 자신이 할 일에 우선 관심을 보이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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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 뉴욕 Lugguge Show Kim 부사장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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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업 파트너를 구하고자 했던 이유는 미주 지역에서 사업을 크게 확장시키려는 비전을 함께 나눌 사람이 필요했다. 만일 혼자 사업을 해왔다면 아마도 도소매업에 안주했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명석하고 성실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가족 중심의 작은 비즈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일단 안정 궤도에 들어가면 안주해 버리고 더 확충하거나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는다. 사업 파트너가 가족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비전을 펼칠 수가 없다. 타인을 쉽게 믿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는 도전정신과 위임이라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
한국인들의 좋은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 는 뜻인 사소취대 (捨小取大)란 말이 들어맞는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작은 이익은 눈앞에 쉽게 보이고 큰 이익은 멀리 있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회고록을 쓰면서 사업을 하려는 후배들에게 조언해 주고 싶었던 말이 있다. 사업은 혼자서만 모든 것을 해나가려 하지 말고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즉 남을 신임하는 자세는 필수다. 이병철 회장의 인사 철학은 ‘의심나면 쓰지 말고, 쓰면 의심하지 말라(疑人勿用 用人勿疑)’였다. 믿지 않는다면 비전도 없고 꿈도 이룰 수 없다. 그저 얕은 이익에 연연하는 아집 센 독불장군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결단했던 경영철학을 함께 나눈 수석 부사장 킴(Kim)은 창업 이후부터 지금까지 사업 파트너로서 일하고 있는 성실한 동료이다. 처음부터 우리는 소자본인 4만 불로 QMD International을 시작했고 이익 분배율을 확실히 지켰다.
창립하면서 돈 많은 사업 파트너를 구해서 시작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즉 자금 때문에 사업 파트너를 구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비전을 함께 나누고 키워갈 그런 철학적 사업 동지를 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변호사를 선임해서 미국인 파트너 킴 버핑턴(Kim Buffington) 씨는 15,000불을 투자하면서 동업을 시작했다. 흔히 동업이 삼년 못 간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는 40여 년 이상을 함께 일하면서 동지애를 바탕으로 회사를 성장시켜왔다.
김(Kim) 부사장은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없었다면 과연 혼자 험난한 파도를 헤치면서 올 수 있었겠는가? 그의 노고와 헌신, 그리고 사심 없는 순수한 사업 열정에 이 글을 통해서 감사를 전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