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화학_2 (29회)

그러나 경성세제 공장은 빨리 바꿔야 했다. 환경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이 고조되면서 수질오염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갔다. 나는 UOP에서 연수를 끝내고 돌아온 장문택 군에게 연성세제 제조공장을 만드는 일을 당부했다 공장설계와 장치설비 건설, 그리고 자금조달까지 그에게 책임지게 했다.

장문택 씨는 산업은행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자금을 얻어왔다. 나는 장치도 우리 손으로 만들기 위해 펌프, 콤푸레서, 반응로, 열교환기를 오산공장에서 만들라고 지시했다. 외국에서 사온 것은 압력용 철판과 파이프뿐이었다. 이 공사에는 외국인 기술자는 한 사람도 가담하지 않았다. 우리는 플랜트 건설의 완전 국산화를 이룩한 것이다.

이것은 당시의 풍조와 크게 다른 것이었다. 기술진이 ‘우리가 할 수 있다’고 해도 기업주들은 못미더워 하고 ‘외국 라이선스를 써라’고 하던 시절이었다. 수입해오면 실수의 리스크를 덜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실수를 감수할 각오로 나가야 기술도 진보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밀고 나갔다.

▲ 1976년 여의도 사옥 기공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나

경향신문은 1980년 10월 연성세제 공장의 완전 국산화를 크게 보도해주었다.

“전엔지니어링의 전민제(61세) 씨는 젊어서 석유화학에 투신, 명성과 재물을 얻은 대표적인 외곬 엔지니어로 통한다. 지난 1972년 유공 부사장에서 물러나 엔지니어링 회사를 차렸을 때만 해도 주위의 반대가 빗발쳤다. 통째로 플랜트를 들여오는 판에 엔지니어링 회사가 되겠느냐는 의문 때문이었다. 그가 회사를 차려 처음 해낸 것이 울산석유기지의 하수처리기술. 가까스로 긁어모은 10여명의 기술자를 데리고 몇 달을 고생한 끝에 개발한 그 기술은 외국 것보다 못 지 않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어 명성이 외국까지 퍼져 홍콩의 담수 플랜트, 싱가포르의 석유화학단지 공사를 맡는 국제급 엔지니어링 회사가 된 것이다.

그가 지난 1979년 이수화학의 세제(ABS) 공장을 무공해 공장인 LAB로 바꿀 때만 해도 그렇다. 우선 이 공정기술을 외국에서 들여올 경우 약 100만 달러나 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국산기술로 대체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국산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사장인 그 자신도 기술진 틈에 끼어 밤을 세워가며 일하기 6개월 만에 마침내 해내고 말았다. 그의 외곬이 결실을 거두었던 것이다.”

나는 사원들의 기술력과 집념을 믿었다. ‘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이 엔지니어들에게 무언 중에 전달된 것으로 확신한다. 그들은 내가 거의 맨손으로 울산공장을 세웠던 패기 그대로 연성 알킬벤젠 공장을 100% 국산화 한 것이다. 이수화학 건설비는 1,100만 달러로 국제 가격이 2,000만 달러의 거의 반값이었다.

▲ 현재 울산의 이수화학 온산공장에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연성알킬벤젠(LAB)과 노말파라핀(NP)을 생산하고 있다.

시운전 전 날 밤 나는 잠을 설쳤다. 당시 이수화학 공장장 박용하 씨가 전엔지니어링이 알아서 지었으니 시운전도 전엔지니어링이 맡아서 해달라고 해서 우리 건설팀이 시운전을 하게 된 것이다. 기름이 넘쳐 확 불꽃이 올라가는 약간의 시행착오 외엔 큰 탈 없이 시운전을 마칠 수 있었다.

그 자리에는 지요다공장 건설의 다마키[玉直] 사장의 일행이 참석하고 있었다. 정부 측에서는 상공부차관이 축사를 하면서 앞날을 축복 해주었다. 우리는 연로한 다마키 사장을 위해 서울역에서 경주역까지 새마을 침대 차 한 칸을 임대하여 제공했다. 그는 우리의 단독 기술로 공장을 세운 사실을 크게 평가하면서 “앞으로 지요다화공이 건설하는 모든 LAB공장은 전엔지니어링과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다카키 사장의 약속대로 지요다화공건설은 우리와 함께 이집트에서 실시한 LAB 공장 건설입찰에 공동 응찰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어떤 이태리 회사에 1위를 빼앗기고 말았다. 지요다화공은 매년 전엔지니어링의 직원 1명의 연수를 받아들였다.

석유화학 플랜트건설이 주업종이었던 지요다화공건설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전엔지니어링과 협력하면서 해외의 플랜트건설에 공동 노력을 기울였다.

지요다화공건설은 1948년 미츠비시의 석유공사부가 독립하여 창립된 회사이다. 다마키 씨는 상무를 거쳐 1955년 사장으로 취임했다. 1908년 중국 대련에서 태어나 규슈제국대학을 졸업한 그는 일본 엔지니어링계의 호걸로 통했으며 1981년 6월에 작고했다. 저서로는 <엔저니어링 산업론> 등이 있다. 1951년 내가 병기행정본부의 고문으로 일본에 갔을 때 알게 된 다마키 씨는 이후 계속 좋은 파트너로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알킬벤젠 공장 국산화는 많은 기술자를 길러내는 효과도 냈다. 프로젝트 디렉터였던 정문택, 윤형근, 이창욱, 양일구(梁逸求), 최승우, 김태영, 정융구(鄭隆九), 오태목 씨 등이 그들이다.

공장의 뼈대를 구성하는 배관 설계는 매우 중요한 것인데, 전엔지니어링은 든든하고 간결한 배관설계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말없이 꾸준히 노력을 아끼지 않던 김인호 팀장과 부하직원의 훈련에 힘쓴 윤진만 씨에게 힘입은 바가 크다. 배관의 계보는 김인호→김태경→최승우 씨로 이어진다.

그러나 공장 완공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운전자금에 필요한 융자를 받아야 하는데 산업은행에서 계속 이대재단의 보증을 요구하고 있었고, 대학재단이 이러한 보증을 서기 위해서는 문교부의 승인이 필요했다. 그런데 판정을 상대로 하는 그 수속 절차가 여간 복잡하고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다.

정부의 레드테이프는 그때나 지금이나 도움을 주기보다 방해가 더 많은 것이다. 또 독일에서 얻어온 차관금을 갚아야 할 기일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이수화학의 자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신한기공의 주를 주식시장에 공개하려고 했다. 신한기공은 뻗어나가는 회사라 주는 좋은 가격에 금세 팔렸고, 거기서 마련된 자금으로 나는 우데(Friedrich Udeh Engineering)의 빚을 갚을 수 있었다.

또 내친 김에 이수화학의 주도 25%만 이화여대 재단에 남기고 전엔지니어링의 명의로 사들여 재정문제를 일단락 마무리 지었다. 또한 이때 5,000만 원을 장모님 이름으로 이대에 기부했다. 기부금은 김활란 장학금으로 쓰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