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점차 중동 일변도의 수주를 탈피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지점을 설치하여 동남아시장 확대를 도모했다. 싱가포르에서 우리는 1983년 고밀도 에틸렌공장 공사를 수주한 일본의 히타치조선으로부터 기계 및 배관공사를 맡았다.
우리는 대체 에너지 개발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1980년 지미 카터의 고향 조지아주의 애틀랜타에서 열린 ‘Bio-Energy 80’에는 윤진만 부사장을 비롯하여 장문택 이사, 통역장교 출신의 남연희 차장, KIST 유두영 박사 등 4명을 파견하여 대체에너지 개발의 흐름을 포착하도록 했다.
이 학회에 참석한 중국 대표는 가축의 분뇨를 이용하여 매탄가스를 생성시켜 취사연료로 이용한다는 발표를 해 주목을 끌었다. 나는 이에 자극을 받아 메탄가스를 이용하는 시설과 사탕수수 껍질을 이용하여 바이오 연료를 만드는 연구실을 만들었으나 당시는 원유가가 비교적 낮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원유가가 치솟은 지금은 바이오연료가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돌이켜볼 때 나의 회사 운영 지침은 고소득을 올리는 일이 아니라 사원들의 자율적인 기술 터득과 발전을 독려하고 그들로 하여금 자긍심을 갖고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에 기어하게 하는 일이었다고 감히 말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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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6년 전엔지니어링 신한기공 여의도 본사 사옥 신축공사 커팅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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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엔지니어링과 신한에서 훈련받은 우리 사원들은 끊임없이 타 회사에서 뽑아갔으나 그들은 모두 새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을 거듭한 끝에 많은 사람들이 사장직에 올랐다.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인 대우엔지니어링의 윤형근 사장은 매년 신입사원을 뽑을 때마다 3개월 간의 각종 공장설계 훈련을 시킨다고 한다. 30년 전에 내가 하던 방식에 공감하고 그 효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학습을 중시했던 탓인지 사원들 간에는 동료라기보다 동창생이라는 의식이 진한 것 같다. 전엔지니어링의 사우들은 ‘전엔지니어링 친목회(회장 최승우)’ 모임을 만들어 모인다고 한다. 이것 역시 그러한 의식의 결과라고 하겠다.
정부는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정유공장을 지은 다음에 1967년부터 시작된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는 12개 분야의 석유화학산업 계열공장 건설을 포함시켰다. 석유화학산업은 플라스틱제품, 옷감,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우리 일상생활의 필수품을 만들어주는 아주 중요한 기초산업이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석유화학제품의 수요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었다. 수요를 채우기 위해 우리나라는 중간제품이나 완제품 등을 수입하여 합성수지, 합성섬유, 합성고무 등을 만들어 공급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당시 상공부장관이던 김정렴 씨는 무역 역조를 막기 위해 원자재를 국산화 활수 있는 석유화학공장 건설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석유화학산업에는 3가지 공정이 있다. 1차 공정은 석유 또는 천연가스를 분해 혹은 증류해서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을 얻는 지방족(Olefin) 계열의 제품과 벤젠, 톨루엔, 자이렌 등 방향족(Aromatics) 제품을 만든다. 2차 공정은 이 기초 원료를 중합(重合) 혼합하여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폴리프로펠렌(PP), 아크릴로니트릴(AN), 카프로락탐 등을 생산한다. 제3차 공정은 2차 공정에서 얻은 원료로 합성세제 원료, 기타 화공약품을 제조하는 것이다.
석유화학은 공정의 필요상 계열화와 집단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12개 석유화학공장을 동시에 건설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또 석유화학공업의 원료는 액체나 기체여서 파이프로 수송되어야 하기 때문에 모두 기초원료 생산지인 정유공장 주변에 집중시키는 것이 유리했다. 석유화학단지가 정유공장이 있는 울산에 세워진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12가지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겠다고 나선 민간 실수요자들은 각기 자금사정이 달라 동시건설의 계획은 좀처럼 진척되지 못했다. 김정렴 상공장관이 부위원장이던 석유화학추진위원회는 공장 건설이 부진하자 나프타분해공장과 방향족 공장을 유공에게 맡겼다. 그리고 폴리에틸렌, 아크릴로니트릴, 카프로락탐과 각 공장들이 공동 사용할 중기와 전기를 공급할 유틸리티 시설은 충주비료에게 맡겼다. 민간 실수요자가 맡게 된 것은 PP, SBR, 메타놀, 무수프탈산, 알킬벤젠 등이었다.
1968년 3월 22일 울산의 100만평이 되는 벌판에서 석유화학 계열공장 착공식이 있었다. 여기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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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년 3월 22일 울산에서 열린 석유화학 계열공장 현장 기공식에서 울산 시민들을 앞에 두고 치사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출처 : 국가기록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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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여기에서 기공을 보게 되는 공장들은 여러분들이 생전에 들어보지 못하던 이름의 공장들로서... 나도 어떤 공장인지 잘 모릅니다.
울산시민 여러분! 울산에서는 공장이기 때문에 공장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겠습니다. 첫째는 나프타분해공장, 이것은 아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폴리에틸렌. 여러분은 아마 처음 듣는 이름일 거예요. 아크릴로니트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아세트알데히드, 폴리프로필렌, 알킬벤젠, 스틸렌, 이런 이름도 있습니다. 이것은 외국사람들의 이름도 아니고 저 아프리카 정글 속에 사는 동물 이름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여기서 건설하고자 하는 우리나라 석유화학공업기지 내 생산 공장 이름입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나는 대통령이 언급한 알킬벤젠 공장을 몇 년 후 맡게 될 줄은 몰랐다. 12공장 건설이 본격화되고 나프타 분해공장을 비롯하여 LDPE, VCM, AN, PP, SBR, 무수프탈산, 알킬벤젠, 유틸리티센터 등 9개 공장이 먼저 동시에 준공되고 카프로락탐, 에타놀, 아세트알데하이드 공장도 1~2년 사이에 완공되었다.
이 콤비나트의 완성으로 우리나라는 매년 1억 2,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수입 원료를 국내에서 생산하게 되고 외화 절약은 1억 달러, 신 고용자 수는 3,000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