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목포지역에서는 이른바, 명문 고등학교로 불리던 ‘목포고’였다. 우리나라에서 유명 인사를 많이 배출한 학교로 알려졌었다. 그 이유는, 도서지방에서 성적이 아주 뛰어난 학생들이 서울로 유학할 수 없어 ‘목포고’로 몰렸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너도나도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교로 진학해야 한다는 경쟁이 아주 심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러려면 적어도 ‘목포고’ 정도는 가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운 좋게도 그 학교에 입학했다. 도서지방에서 목포로 올라온 학생들은 대부분 자취생활을 하면서도 공부를 잘했다. 시골에서 논밭, 심지어 소, 돼지까지 팔아서라도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반짝이던 그들의 눈빛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 눈빛이 목포에서 공부하던 그 학생들만의 것이었겠는가? 그런 꿈을 품은 학생들이 전국에 헤아릴 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한편, 너나 할 것 없이 서울의 명문대학교를 향한 비장한 각오와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 정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음도 부인할 수 없다.
나 역시 서울로 가야만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고등학교 3년을 마쳤다. 고교 시절을 돌아보건대 굳이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대학입시 공부한답시고 몇몇 친구들과 모여서 치기 어린 인생 설계를 해보던 추억 정도다.
내 장래희망은 경찰서장이었는데, 그 당시 경찰관들의 형편이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보다 훨씬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계통에 취업하려면 법대와 유사한 학과에 진학해야 하고, 문과 쪽으로 엄청난 경쟁을 해야 했으므로 생각을 바꾸었다. 차라리 농대에 진학해서 농업으로 내 인생을 설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생각 끝에, 농과대학에 진학하기로 하고 그쪽으로 준비했으나 수원농대(서울대 농과대학)에 입학할 수 없었다. 원하던 농과대학에 진학할 수 없게 되자 1년 동안 재수하면서 한동안 마음속에 갈등이 일어서 방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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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포의 유명한 주조회사였던 호남동의 삼학소주 (195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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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년 재수하면 되리라 기대했던 수원농대는 결국 진학을 못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나를 부르셨다. “앞으로는 돌이 말하는 세상이 된다더라(지금의 반도체 같은 재료를 뜻함).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선호하는 경제나 법 공부보다는 돌을 전공하는 요업(窯業)계통이 어떠냐?”라고 묻는 것이었다. “요업요? 그것이 무엇인가요?” 나는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으로 아버지께 되물었다. “요업에는 도자기도 포함되는데, 목포에 있는 ‘행남사’가 바로 그 대표적인 요업공장이다. 또 ‘조선내화주식회사’에서는 돌을 사용하여 제철공장의 용광로를 짓는다.”라고 아버지는 차분하게 대답해 주셨다.
내가 알기로도 그 당시 두 회사가 한국을 대표하는 요업공장임은 분명했다. 아버지는 공장 기계를 수리하기 위해서 ‘행남사’에 자주 출입하셨고, 공장소유주이신 김준형 회장님(작고)과 자주 대화도 하셨는데, 그분으로부터 “미래에는 돌멩이가 말을 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컴퓨터 핵심부품으로 사용되는 알루미나 기질체(Alumina Substrate)나 반도체(semi-conductor) 같은 재료들은 넓은 의미에서 도자기의 일종이다. 그런 재료들이 미래에 촉망받는 공업이 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돌멩이 공업에 대해 은근히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도자기가 평범한 그릇에 그치지 않고 반도체처럼 특별한 첨단재료가 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꿈같은 재료공학임이 틀림없지 않은가?
나는 대학 진학 방향을 다시 정하여 그 이듬해 한양대학교 공대 요업공학과라는 생소한 학과에 입학했다, 그때가 1961년이었으니까 벌써 반세기가 지난 52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막상 입학을 하고 보니 등록금과 기거할 집이 문제였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서지 않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새로운 분야에서 장래의 꿈을 실현해 보라고, 아버지는 첫 학기 등록금과 청량리에 있던 먼 친척 집의 방까지 알선해 주셨다. 어쨌든 대학생으로 사는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때는 목포에서 서울까지 완행열차로 15시간가량 걸렸는데, 열차를 타고 서울로 떠나기 전날 아버지께서 나를 불러 “아무리 어렵더라도 꿈을 접지 말고 뭐든지 열심히 해봐라.”라며 당부하셔서 나는 뭐가 뭔지는 몰라도, 서울로 유학 간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자신감에 넘쳐 힘차게 대답했었다.
아버지는 14살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길로 일본으로 가셔서 그곳에서 온갖 고생을 하셨다는 말씀을 틈틈이 하셨다. 어린 나이에 일본에서 상점 점원을 시작으로, 결국 야간 공업학교에서 기술을 배웠고, 그 기술로 일본 군수공장에서 일하시다가 해방을 맞으셨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보다 도전 정신이 강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