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에서 폭포로 (2화)

어머니한테 듣기로는, 내가 3살 때 목포로 이사했다니까 일본으로부터 해방되던 1945년에 그곳을 떠난 것이다. 3살적의 일을 어찌 기억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어렴풋이 생각나는 것은, 내가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라고 불렀음)에 입학하던 무렵의 기억 정도가 전부이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목포 ‘산정초등학교’였다. 7살에 입학했으니까 1949년에 초등학생이 된 것이다. 그 무렵에는 검정고무신을 신고, 책 보따리를 허리에 매고 초등학교에 다녔다. 의복이라야 주로 헌 옷이었고, 해진 양말은 속에 전구를 넣어 꿰매 신었다.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의 형편이 그토록 어려운 시기였다. 오늘날 빈민국인 동티모르나 방글라데시 정도의 수준이랄까?

한 학급에 70~80명 정도씩 분반이 되어 있었고, 그것도 오전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한 것으로 보아서는 일본으로부터 막 독립한 신생국가의 딱한 처지가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지금 생각해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점심 도시락(당시에는 벤또라고 불렀음)을 싸가지고 다닌 학생들은 그나마 좀 형편이 나은 편이었고, 절반 이상의 학생들은 도시락을 싸가지 못했다.

우리 집은 아버지께서 철공소를 운영하시며 자그마한 밭도 경작하고 계셔서 그래도 끼니 걱정은 안 해도 되는 형편이었다. 보리밥 도시락이라도 싸서 다닐 수 있었으니까…….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철공소에서는 주로 농촌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농기구들과 손수레를 수리하셨다. 때로는 학교 체육기구도 설치하시고, 목포항 선창부두에서 어선의 엔진도 수리하셨다. 어쨌든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일이 밀릴 때는 밤새도록 공장을 가동했다.

우리 집의 구조는 살림집과 공장으로 반씩 나누어져 있었다. 살림하는 공간에는 방 3칸과 부엌이 있었는데, 방 한 칸은 부모님과 어린 동생들이 사용하고, 나머지 두 개 중 한 개는 누님들과 작은 동생들, 부엌 도우미가 차지했다. 남은 방 한 칸은 공장 직공들, 형, 그리고 내가 함께 기거했다. 그러니까 내 형제자매는 두 분의 누님과 남자 형제들이 6명이나 되었으니 모두 8남매의 대가족이었다. 나는 남자 형제 중에서는 둘째이고, 8남매 중에서는 넷째이다.

그러니까 해남에서 겨우겨우 찾아뵈었던 윤산이 삼촌이 나를 부를 때 ‘남웅이’보다 ‘둘째’라는 호칭에 더 익숙하신 듯했다.

나는 스스로 내 두뇌가 영리하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집에서 예습 복습을 할 수가 없었다. 학교 숙제 정도는 어쩔 수 없이 공장에 딸린 방에서 했지만, 모든 여건이 공부를 더 할 수 없도록 부추기는 상황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학교에서 바로 이해를 못 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집에 와서 책을 보며 예습 복습을 할 수 없었던 여건도 내 성적이 저조할 수밖에 없는 핑계거리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아마도 중위권의 성적으로 초등학교를 마친 것 같다.

▲ 유달중학교의 현재 모습 (내가 다닐 때는 목포 제2중학교라 징했다)

나는 목포 제2중학교(후에 유달중학교로 바뀜)에 다녔다. 목포 제2중은 대체로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초등학교에서 중‧상 그룹에 속하던 학생들이 진학한 학교였다. 때로는 도서지방에서 들어온 학생 중 성적이 아주 우수한 수재들도 있었다. 그들 중에서 후에 정치가, 장·차관, 법조인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나는 중학교 시절에도 평범한 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다고 불량한 학생들과 몰려다니거나 그릇된 활동을 한 기억도 없다. 그저 말없이 조용히 학교에 다닌 것 외에는 특별한 기억이 없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도,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학교에서 바로 이해하지 못 하면 집에 와서 예습과 복습을 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다. 숙제가 있는 날은 공장 직공들과 기거하던 방 한구석에 놓인 사과 상자 같은 책상에서 대충 해결했고, 나머지 공부는 적당히 넘어가는 식이었다.

중학교 시절도 흥미롭게 추억할 만한 일이 별로 없지만, 한밤중에 공장 직공들과 멸칫국 물에 국수 삶아 먹던 일은 너무나 재미있었다. 그래도 공장 직공 형들은 아버지한테서 월급을 받았기 때문에 국수를 구입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고, 멸치는 내가 집에서 적당히 조달했던 생각이 난다. 그러니까 직공 형들이 국수를 사 들고 오면 나는 멸치를 준 것이다.

중학교 3년 동안 내 성적이 우수하진 못했으나 학급에서 중·상급 정도의 실력은 유지했고, 1956년 2월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 전체가 시끌벅적했다. 특히, 동네마다 청소년들이 중심이 된 불량배 그룹들이 있었고, 그들끼리 여기저기서 패권 싸움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살던 목포도 유명한 불량배들이 우글대는 곳이었다. 전국에서 범죄율이 가장 높고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이 ‘목포시 산정동 1048번지’였는데, 내가 사는 동네로 가려면 그 근처를 지나야만 했다. 그래서 행여 어깨라도 좀 으쓱이거나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불량배들에게 얻어맞기 일쑤라 그저 조심조심 지나다녀야만 했다. 그쪽 동네에 아는 친구들도 몇 명 있었지만 휩쓸려 다닌 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