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 소동_1 (50회)

나는 대한민국 최초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도저히 상상 못할 음모와 부조리 그리고 투쟁이 얽힌 사연이 있었기에 여기에 그간의 과정을 정리해서 적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나는 1955년 11월 25일에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최신 자연과학의 발달이 법철학에 미친 영향>이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 청구논문을 제출하였다. 내 나이 39세. 나의 스승인 오타까 교수도 30대에 학위를 땄으므로 나도 40이 넘기 전에 학위논문을 써야겠다고 서두른 것 같다.

박사학위 논문은 대학원 과정을 마친 자만이 제출할 수 있으나 당시에는 과도기적 조치로 현직 대학교수는 대학원을 거치지 않고도 논문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하는 특례가 있어 나는 이 특례에 해당되었다. 그러나 나는 최초의 신청자였기 때문에 이 방면에서의 선례가 없어 그냥 대학원 당국자에게 사전 연락 없이 논문만 제출하였다. 그래서 대학원장 이병도 박사로부터 왜 아무런 연락도 없이 갑자기 제출하였느냐는 말을 듣기도 하였다.

해를 넘겨 1956년(40세)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제출한 논문은 아직 대학원에 정식으로 접수되지 않았다. 법과대학을 대표하는 대학원위원인 고병국 학장(동경제국대학 출신)이 그 논문의 접수를 보류해 달라는 요청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내에는 아직 한 명의 법학박사도 없고 지금 미국에서 유기천 교수가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으니 그가 박사가 되어 돌아올 때까지 논문 접수를 보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고 학장의 생각이었다.

이런 속사정을 나는 물론이요 대학원장까지도 깜깜하게 모르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봄과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되었다. 이때 미국 하바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고려대학교의 조기준 교수가 어느 날 차락훈 교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황 교수가 제출한 논문은 철회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미국에서 유기천 씨를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고병국 씨가 유기천 씨에게 보낸 황 선생 논문을 보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유 교수가 하는 말이 미국에서 박사가 되어 귀국하면 이 논문의 심사위원이 되어서 반대표를 던지면 결국 통과되지 않을 것이라고 큰 소리를 쳤다”는 것이다.

▲ 고병국 전 서울대 법대 초대 학장(1909-19763.) [사진출처 : 경희대 홈페이지]

차 교수를 통해 이 소식을 들은 나의 충격은 컸다. 동경제대 출신한테 경성제대 출신이 크게 한방 먹은 것이다. 나에게 이 이야기를 들은 한태연 교수(와세다 대학출신)는 그 길로 대학원장 이병도 교수(역시 와세다 출신)를 찾아가서 따졌다. 원장 선생님은 동대 출신도 아닌데 왜 고병국 씨의 편을 드느냐고 말하며 조기준 씨가 한 말을 그대로 전하였다. 그러자 이 원장은 곧 대학원위원회를 소집하고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선언하셨다.

“황산덕 교수가 제출한 논문의 접수가 1년 이상이나 늦어졌습니다. 원장 직권으로 이 논문을 접수하고 다음과 같이 심사위원을 정합니다. 주심에 유진오(성대), 그리고 위원은 박종홍(성대), 윤태림(성대), 이항령(성대), 고병국의 네 분으로 합니다.”

결국 심사위원 5명 중에서 4명을 경성제대 출신으로 만든 것이다. 이리하여 나의 박사학위 청구논문이 대학원에 접수되었다. 논문이 그저 접수되는 데만 1년 이상 걸렸으나 접수된 논문의 심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해를 넘겨 1957년(41세)이 되자 심사위원들은 일정에 따라 진지하게 심사를 해나갔다. 논문에는 양자 역학에 관한 설명이 상당히 많이 들어있었으므로 문리학교수의 학설감정을 받기도 하였다. 이 때에 문리과 대학의 윤세원 교수는 참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고병국 씨는 한 번도 심사회의에 출석하지 않았다. 고 씨는 미국에 있는 유기천의 대학 선배였지만 유 교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논문심사는 모두 끝났고 심사위원 네 분은 ʻ가ʼ의 판정을 내렸다.

대학원 직원이 고병국 씨를 찾아가 도장을 찍으라고 권유하였으나 처음에는 안 찍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이미 심사위원 네 분이 찬성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반대해도 논문은 그냥 통과된다는 말에 결국 도장을 찍었다. 이리하여 논문은 12월 14일에 대학원위원회를 통과하였다.

1958년(42세)이 되었다. 학위논문이 대학원을 통과하였기 때문에 서울대학교 윤일선 총장은 나에 대한 학위수여 승인신청서를 문교부에 제출하였다. 지금은 박사학위 수여가 문교부에 대한 보고사항으로 되어 있지만 그 당시에는 문교부의 승인이 있어야만 되는 승인사항이었다.

당시의 문교부의 장관은 최재유 씨, 차관은 김선기 씨였다. 그런데 김 차관은 본래 서울대학교의 언어학 교수로 있던 사람으로 유기천 씨와 평소에 특별한 관계에 있었다. 나의 학위수여 승인신청서가 문교부에 접수되자 김 차관은 그 서류를 검토하지도 않고 그대로 캐비넷에 넣어둔 채 묵살해 버렸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유진오씨는 김 차관을 찾아가 따졌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엉뚱한 말을 하였다.

“ʻ황산덕 씨가 박사가 되면 그것은 법학박사 제1호가 됩니다. 그런데 박사도 아닌 사람들이 어떻게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합니까. 그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유기천 씨가 지금 미국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데 그 분이 박사가 되어 돌아오면 심사위원을 다시 구성하여 재심사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유 선생이 “나는 법학박사가 아닙니까”라고 따지자 그는 “선생님은 이화대학에서 명예학위를 받았을 뿐 그것도 학위입니까”라고 반문하자 유 선생은 기가 막혀서 그대로 나왔다고 한다. 김선기 씨는 나와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지내온 사람이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유기천 씨의 이름을 들먹이며 나의 일을 체면불구하고 방해하였다.

썩은 고위층의 압력이 없고서는 생길 수가 없는 권력형 비리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이리하여 그 해의 3월에 있은 졸업식에서도 나는 끝내 학위를 받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