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 장발(雨石 張勃)과 불재 윤효중(弗齋 尹孝重)의 갈등관계는 이미 전항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그 당시 상당한 화제였다. 대한미협과 한국미술가협회는 마치 여야의 입장에서 다투는 것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불재가 당시 자유당의 2인자였던 이기붕(李起鵬)을 찾아가 장발 씨는 미술계에서 야당적인 행동으로 화단을 시끄럽게 할 뿐 아니라 미술문화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면서 우석의 서울대 학장 자리가 화근이라고 말했다는 정보가 한국미술가협회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이기붕이 장면(張勉) 씨가 아무리 내 정적(政敵)이지만 그의 실제(實弟)인 장발의 미술대학장 자리를 내놓으라고 할 수야 있느냐고 말해 불재를 돌려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이 말을 들은 한국미술가협회 회원들은 그래도 이기붕은 사리를 분별하는 사람인가보다고 칭찬까지 했었다.
대한미협과 한국미술가협회가 불화를 계속하는 와중에 나는 56년에 서울대학교 대강당 벽화를 그렸다. 대학본부의 요청으로 미술대학이 벽화제작을 담당하게 됐는데 동양화로 할 것이냐, 서양화로 할 것이냐를 놓고 의견을 나누었으나 동양화로 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그 일이 나에게 떨어진 것이다.
무대 오른쪽엔 산수화를, 왼쪽엔 인물화를 그리기로 결정하고 산수화는 심산이, 인물화는 내가 제작하기로 했다. 나는 대학강당 벽화라는 것을 고려하여 <청년도(靑年圖)>를 그렸다. 이 해는 서울대 벽화를 그렸을 뿐 아니라 내가 서울대에 근속한지 10주년이 되는 해여서 여러 가지로 뜻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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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도(靑年圖) 1952년, 212*160cm, 서울대학교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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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6회 <국전> 때는 전시 중에 동양화가 세 사람이 국전에 대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이 비난의 포문을 열었다. 그들은 당시 화단의 중진이며 국전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화가들이어서 일반의 관심이 컸다. 이당은 서울신문에 ‘선배의 도의를 찾자’(57년 10월 21일), 소정은 연합신문에 ‘공정성을 잃은 심사’, 정재 최우석은 조선일보에 ‘편파적인 심사’라는 글을 각각 기고, 불평을 토로했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초기 <국전>의 작품 심사는 공정하고 순수했다고 믿는다. 이때는 너나없이 건국(建國) 초이고 우리 손으로 여는 국전이기에 성심과 성의를 다하겠다는 일념뿐이었다.
대한미협과 한국미술가협회의 암투도 날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시들해졌다. 자유당이 말기현상을 보이면서 대한미협도 기세가 꺾였다. 그래서인지 늘 검정색 지프 자가용을 타고 다니던 불재를 <국전> 심사장에ㅐ서 만났는데, 그가 먼저 인사를 건네면서 “월전, 좋게 지냅시다” 하고 말을 붙였다. 그래서 나도 “개인적으로 무슨 좋고 나쁘고가 있겠소” 하고 사감(私感)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아니, 뭐 꼭 사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괜히 서먹한 사이가 되어서 그렇다”고 말끝을 흐렸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울대 음악대학장으로 있던 현제명 씨가 전화를 걸어와 잠깐 만나자고 청해왔다. 현 학장과는 수인사를 하고 지내는 정도이지 그다지 친근한 사이가 아니어서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약속한 함춘원(含春苑) 교수회관에 나가봤더니 현 학장은 대뜸 나에게 “불재를 서울대 미술대학에 취직 좀 시켜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천만 뜻밖의 일이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현 학장, 내게 무슨 인사권이 있습니까? 장 학장과 친하신데 직접 이야기 하시지 왜 제게 그런 부탁을 합니까?” 하고 반문했다. 그랬더니 현 학장은 “장 학장은 워낙 대꼬챙이 같아서 말이 통해야지... 월전이 알아서 처리 좀 해주시오” 하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는 이어서 “불재가 좀 꺼들꺼들해서 그렇지 사람이야 좋지 뭐” 하고 은근히 치켜세웠다.
나는 현 학장을 만나고 돌아와 장 학장에게 “현 학장이 불재를 서울대 미대에 취직시켜 달라고 그럽디다” 했더니 장 학장은 한 마디로 “그 사람 돌았군...”하고 일축해버렸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불재가 간곡히 청해서 집 구경도 할 겸 삼선교 산잔등이에 있는 불재 집에 가보았다. 양옥과 정원이 그때로서는 으리으리한 편이고 살림살이도 매우 호화로워 보였다. 그는 집을 지을 때 남산 조선신궁(朝鮮神宮)의 축대석을 옮겨다 써서 풍수(風水)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었다. 왜 좋은 집터에 신궁의 헌돌을 쓰느냐고, 새 집에 패가의 석재(石材)나 재목(材木)은 쓰지 않는 법이라고 충고를 했다는 것이다.
불재는 이 집을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