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정치적 문제로 올림픽의 위상을 뒤흔든 대회였다.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비난하면서 대회 보이콧을 지시해 서방 국가들이 불참을 선언하여 반쪽 대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국의 강력한 우방인 우리나라도 참가하지 않은 대회로 기록된다.
해방 후 우리나라는 6.25 동란 중인 헬싱키 올림픽에도 참가할 정도로 올림픽의 이상과 이념을 실현하는데 충실해 왔지만 미소 양강의 극단적인 대립이 올림픽의 중단 없는 참가를 가로막은 것이다. 80년, 84년 두 대회의 보이콧으로 서울올림픽의 동유럽권 참가문제가 끝까지 우리를 괴롭혔다.
모스크바 대회에는 50개국 8,000여 명이 참가했다. 비록 반쪽 대회였지만 그래도 올림픽은 올림픽이었다. 소련은 80억 불을 들여 대회를 치르면서 공산권 맹주의 위용을 과시했다. 이때 미국 NBC가 8천만불에 TV 방영권을 계약했는데 미국 불참으로 계약이 취소 되고 손해를 보는 바람에 서울올림픽 TV방영권 교섭 때 보장문제로 우리가 무척 애먹었다.
이곳에서 킬라닌(Killanin)의 뒤를 이어 사마란치(Samaranch)가 새 IOC 위원장으로 피선되면서 IOC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황금기가 시작된다. 이때 IOC기금은 100만 달러밖에 안되어 재정위기에 놓여있었는데 사마란치가 구해냈다. 모스크바 올림픽대회 기간 중 열린 IOC 총회는 태권도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의 꿈에 교두보를 마련했다.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려면 우선 그 첫 단계가 IOC 승인 종목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대륙종합경기 가입이 가능하다. 나는 IOC에 신청서를 제출했고 길란두(Guirandou) 부위원장과 스타보(Staubo) 위원 등을 통해 로비를 시켜 모스크바 총회에서 무난히 승인 종목으로 채택시켰다. 두 사람은 ’81년 바덴바덴 IOC 총회 전에 나의 초청으로 서울을 방문했고 스타보 위원은 울산 조선소까지 방문하고 정주영 회장도 만난 사람이다. 한국의 경제를 본 것이다. 이들은 바덴바덴 때 몇 안 되는 한국의 거점 역할을 해주었다.
|
|
| ▲ 1982년 4월 8일 국기원을 방문한 사마란치 위원장 / 필자로부터 WTF 현황을 듣고 있다 |
|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터져 나와 한 2년 고생을 했다. 세계태권도연맹이 IOC 승인 종목 연맹이 되었다는 뉴스가 한국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자 ITF 최홍희 총재가 IOC 프로그램위원장 싸나디(Czanadi, 헝가리)에게 항의서한을 보냈다. IOC는 세계 각국 NOC에 ‘ITF의 승인 현황, WTF의 승인 현황, 양 단체를 인정한 곳’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IOC 승인에 이어 정식종목 신청도 내놓았는데 ITF와의 갈등 문제가 불거지자 사마란치 IOC위원장으로부터 신청서 검토를 보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때는 상의할 곳도 상의할 사람도 없어 모든 것은 내 독단으로 처리할 때였다.
마침 내가 KOC 부위원장 겸 명예총무를 할 때 사귄 NOC 관계자들과 연락해서 WTF의 우세함을 설명하는데 전력투구를 했다. 또 WTF가 GAISF에 가입되어 있는 것과 CISM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있는 것 등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마침 그때 한국이 올림픽 개최 준비를 시작하는 때여서 방한하는 세계 스포츠 지도자들을 국기원에 초대해서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설명한 것도 큰 힘을 발휘했다.
’88서울 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후인 ’82년 4월 8일에는 세계 스포츠 대통령이라고 일컫는 IOC 위원장, 사마란치를 국기원에 초청해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현황보고를 했다. 임시 WTF 집행위원회를 소집했다. 돈이 없어 여비를 못 대주어 모두 자비로 달려왔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젊은이를 위한 새로운 스포츠라는 인상을 깊게 받은 듯 했다. 이때 사마란치 위원장에게 환영 화환을 드린 화동이 지금은 유명 영화배우인 김혜수다. 김혜수는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 여자 배우로는 드문 태권도 유단자이기도 하다.
사마란치 방문 후 음바예, 로드리개스, 고스퍼, 이사바 폰세카, 베를리유 사무총장, 쿠마르, 키요카와, 스타보, 소렌슨, 루즈벨트, 데래은, 리키호프 등 IOC 위원들과 켈리 미국 NOC 위원장, 파머 세계유도연맹회장, 에반즈 국제 탁구 연맹 회장, 네비올로 육상연맹회장, 마그리오네 수영연맹회장, 켈러 GAISF 회장 등 스포츠계 저명인사들을 국기원에 초청하여 태권도를 소개하고 명예단증과 기념품도 전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