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 올림픽 이야기 (11회)

몬트리올올림픽은 적자 올림픽이라고 말들이 많지만 손해 본 올림픽은 있을 수 없다.

예산을 도시개발까지 포함하느냐, 아니면 대회경비만을 계산하느냐의 차이다. 몬트리올은 캐나다의 퀘벡주(州)에 있는 도시다. 퀘백주는 앵글로색슨계가 주를 이루는 캐나다에서 프랑스계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따라서 영어보다는 불어가 더 통용이 잘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올림픽은 국가가 유치하는 것이 아니고 도시가 유치한다. 그렇지만 올림픽 같은 세계 최대의 이벤트는 국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지금은 국가의 어마어마한 투자 없이는 올림픽 유치도 못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어렵다. 상위 메달 10개국을 보면 모두 그런 나라에 해당한다.

몬트리올은 국가의 지원이 다른 개최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또, 도시형 올림픽 추진으로 시장이 비행장, 경기장, 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전력을 쏟았다.

이때는 올림픽의 주 수입원인 방영권 도입이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주관방송사가 미국의 ABC사였는데 겨우 2,500만 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올림픽 경비로는 30억 달러를 지출했다.

몬트리올 올림픽에는 KOC부위원장 겸 명예총무로 참석했다. 김택수 위원장과 나란히 함께 개회식을 지켜보았다. 본부석의 트뤼도 수상 내외가 눈에 띄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높은 음성으로 개회를 선언했다. 영국 여왕과는 1967년 배의환 주영한국대사의 신임장 봉전식 때 수행하여 개별 대화를 한 일이 있었다.

성공올림픽의 요건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그 나라의 성적이다.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캐나다는 은메달 2개를 획득하는데 그쳐 자국민의 열기를 이끌어내지 못한 실패작이었다. 아무리 대회를 잘 치러도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실패작이라는 것을 우리도 대회 유치 때 고려해야 할 일이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루마니아의 요정 나디아 코마네치가 체조의 여왕으로 화려하게 등극했다. 체조사상 처음으로 10점 만점을 딴 코마네치는 마치 인형인 듯한 무표정한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코마네치의 라이벌인 소련의 넬리 킴도 금메달을 2개 획득했는데 어머니가 한국인이어서 더욱 각별한 애정이 갔다. 그 후 내가 KOC위원장 때 방한해서 만났고 우리 체조를 지도해주기를 바랐는데 우리 체조협회가 그만큼 높은 보수를 낼 수 없어 좌절됐다.

또 몬트리올에서는 영국의 앤(Anne) 공주가 승마경기에서 낙마한 것도 뉴스거리였다.

대회운영은 매끄러웠지만 정치적 문제로 시끄러웠던 대회였다. 아프리카 36개국이 인종차별 문제에 항거해 보이콧하고 귀국했으며(콩고의 강가 의원 주도) 대만이 국기와 명칭 문제로 참가하지 못했다. 일본은 200여 명 규모, 우리는 60여 명, 북한은 40여 명 수준의 선수단이 파견됐다. 북한은 사격에서 금메달 1개를 땄는데 금메달 수상 인터뷰에서 북한 선수는 “표적을 원수의 가슴으로 생각하고 쐈다.”고 말해 올림픽 정신 위배문제를 놓고 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등 말이 많았다.

▲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경기장에서 장기영 IOC위원과 함께

한국도 해방 후 첫 금메달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획득했다. ’48년 런던올림픽에 참가한 이래 28년 동안 첫 금메달을 기다려온 한국은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숙원을 풀면서 금메달의 물꼬를 터트렸다. 양정모 선수는 지난해 대한체육회 스포츠영웅으로 헌액되었다.

여자 배구팀도 구기사상 첫 메달을 조국에 안겨주었다. 동메달에 그쳤지만 한국 선수들의 투혼은 눈부셨다. 신장과 체격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선수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 나는 작은 새로 불린 조혜정, 세계 최고의 세터 유경화, 유정혜, 윤영내, 백명선, 변경자의 활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동독, 폴란드, 쿠바 등 세계 최강의 선수들과 겨루었는데 꼭 처음 2세트를 져서 패색이 짙었으나 불굴의 투지로 나머지 세트를 모두 따내 3~2의 짜릿한 역전승을 일구어 냈다. 연금문제로 후보 선수도 주느냐는 등 논란이 있었는데 변경자 등 후보 선수도 활약했기에 주기로 결정됐다. 그 후 유경화 선수의 결혼식 때 내가 주례를 맡기도 했다. 기대했던 여자 농구는 이옥자 등이 맹활약했지만 마지막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유도의 조재기 선수도 진기록을 세웠다. 조재기 선수는 자신의 체급에서 패해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했는데 머리를 깎고 무제한급에 다시 출전, 동메달을 따낸 것이다. 체급을 올려 도전한다는 것은 마치 중학생이 대학생에게 도전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조재기 선수의 승부에 대한 집념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조재기는 서울올림픽 때 조직위의 유도과정으로 일했고 그 후 부산시체육회 사무처장도 지냈다.

올림픽에서는 ID카드가 참가 선수 규모에 따라 배분된다. KOC에는 B카드가 총 5장이 나왔는데 당연 배분용인 김택수 회장과 명예총무인 내 몫 2장, 그리고 손님용 3장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IOC 위원은 장기영 씨였는데 IOC 위원은 A카드가 배분된다.

그런데 김택수 회장이 손님용 B카드 3장 중 1장은 이원경 KOC 부위원장(후에 체육장관)에게 주고 나머지 2장은 자기 재일교포 손님에게 주었다. 이를 안 박종규 대한사격연맹 회장이 노발대발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경기단체회장은 자기네 국제경기연맹에서 발급을 받아야지 KOC가 일일이 전부 발급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대사관에서 비싼 입장권을 구매해서 안내를 해주어도 트집을 잡았다.

몬트리올 올림픽은 편의 시설이 그리 잘 갖춰지지 않아 불편함이 많았다. 칸막이 방에 10명이 숙박하는 식이라 불만이 터져 나왔다. NOC 본부가 머물던 라마다호텔(Ramada)은 시외에 있는데 도심과는 한 시간이나 떨어져 있었다. 김택수 회장은 불편하다면서 시내 보나벤추라 호텔(Bonaventura)로 옮겼다. 그러면서 KOC에 배정된 차 1대를 가져가 버려서 차량 배차가 안 돼 나와 이원경 부회장은 지하철로 개회식장에 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캐나다에 우리 교민이 별로 없을 때여서 나는 배구장 등 경기장에 태권도 사범 20여 명으로 응원단을 구성해서 한국 선수단을 힘차게 응원했다. 윤오장 사범이 수고를 많이 했다. 뉴욕에서 한병기 UN 차석대사 내외가 와서 참관했다. ITF 사범들이 토론토에 와서 나를 찾아다니며 귀찮게 했던 대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