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IOC 부위원장까지 될 수가 있었습니까?”
내가 외국에서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중의 하나다. 그 당시 동양인으로서는 상당히 어렵다고 알려진 IOC 부위원장에도 선출되었으며, 동양인 최초로 IOC 위원장 후보로 나섰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매스미디어들은 나와 인터뷰를 할 때면, “그 성공의 비결이란 무엇인가?” 하며 질문을 꼭 한다. 나는 이 같은 질문에 다음과 같이 한마디로 답을 한다. “특별한 비결은 없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실망의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아마도 특별한 대답을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특별한 비결은 없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였으며, 그만큼 운도 따라주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 상투적인 답변 같지만 이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력이 전혀 없으면서 세계적인 위치로 올라가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면 내가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힘이 있었다면 그것은 외국어 구사 능력일 것이다. 나는 6개국의 언어를 배우고 익혀 왔다. 그래서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데 있어서 언어 문제로 대화가 되지 않는 불편을 겪어 본 적이 없다.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독일어, 스페인어, 그리고 60세에 이르러 ’88 올림픽 문제로 구 소련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배우게 된 약간의 러시아어다.
일본어는 어려서부터 일본인이 다니던 초등학교(소학교)와 중학교에 다녀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가 있었다. 특별히 배우고자 해서 익힌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해방 후 일본어를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던 반면, 나는 계속해서 일본어를 유지해 왔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언젠가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1993년 1월 도쿄에서 열린 스모 대회에 전무후무하게 특별 게스트로 초청되어 NHK TV의 실황 중계해설을 맡은 바 있다. 일본 씨름인 스모는 일본에서 4000만 명이 관전하는 인기 스포츠다.
IOC에서는 문서 교환과 스피치(Speech), 기자 회견을 할 때는 프랑스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영어만으로도 대충 넘어갈 수는 있다. 그러나 동양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모두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발군의 실력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나는 프랑스어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중학교 1년 때부터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아마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과목으로 기억한다. 프랑스어는 중학교 4년 때부터, 독일어는 5학년부터 배우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조금씩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스페인어는 젊어서부터 공부를 했는데 미국 유학 시절, 집중적으로 공부를 하였다. 내가 다니던 대학은 텍사스에 있었는데 거기 주민의 약 75%가 멕시코인이었기에 TV, 라디오 방송, 신문들 대부분이 스페인어를 사용했다.
|
|
| ▲ 1987년 9월 17일 IOC본부 서울 올림픽 초청장 발송식에서 |
|
외국어는 외국인과 빈번히 접촉하는 중에 가장 습득하기 쉽다는 점을 몸소 체험하였다. 어학이란 습관에 의하여 몸에 익히는 것이다. 지금도 외국어를 습득하기 위해서 유학을 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꼭 유학에 한정하지 않고 단기간의 어학연수도 그것을 확실히 활용한다면 현장에서 다듬고 발전시키는 기회가 되어 외국어를 터득하는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유학하던 1950년대에는 유학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행운이었다. 그 당시 한국군에서는 미국 유학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의도에서였다. 유학생 선발 시험에 합격한 사람 중에서도 우수한 학생에게는 미국 대학의 장학금을 주는 장학금 제도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한정된 것이고, 대부분은 자비 유학이었다. 당시의 유학생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일하면서 면학에 전념하였다. 외국어를 습득하기 위하여 현지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생활 속에서 살아 있는 언어를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는데, 내 유학생활은 스페인어 학습을 위한 이상적인 장소를 제공받은 것이었다.
조지아 주에서는 낮에는 미군 보병학교에서 공부와 훈련을 하고, 밤에는 그곳 대학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였다. 그 때문에 수면 시간은 겨우 5시간 정도뿐이었다. 너무 잠이 부족하고 과로를 하여 코피를 흘릴 정도였다.
우리가 살아온 시대에는 태어날 때부터 전쟁의 연속이었다. 출생하던 해에는 만주사변이 있었고, 초등학교 때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일어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6․25 동란이 발발하였다. 당시는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해야만 겨우 졸업을 할 수 있었던 격변기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상황 하에서 단기간에 공부에 집중할 수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내가 살던 미국 서부의 경우, 연간 소요되는 비용이 약 500달러 정도였다. 그 중에서 학비가 2학기분이 150달러였고, 나머지는 기숙사 비용이었다. 동부에 있는 대학은 연 4천 달러 정도로 꿈도 꿀 수가 없었다.
어학은 하나의 습관이다. 무조건 기억하고, 사용하며, 몸에 익히는 것뿐이다. 꾸준히 노력하며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는 영어 사전을 통째로 암기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래서 나도 콘사이스 사전의 A, B, C, D까지는 암기를 했지만, 다음 단계로 들어가면 A에서 기억한 단어들을 모두 잊어버리곤 했다. 이렇게 하다가는 언제 사전을 통째로 암기할 수가 있을까 하고 불안했으며, 전부 기억한다고 해도 다 쓸 수는 없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한번 기억한 단어를 자주 사용할 수 있는 구문을 많이 만들어 기억하며 단어의 폭을 넓히는 방법으로 바꾸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단어를 많이 암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끊임없이 활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점을 명심했다.
영어 학습에 있어서 나는 친구들과 함께 셰익스피어 책을 교재로 했다. 문학에 흥미가 있었기에 학습 효과 면에서는 사전을 암기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셰익스피어 희곡에는 풍부한 어휘와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 속에서 영국인의 사상과 전통을 배울 수가 있었고, 어떠한 교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연희대학 1학년 때는 매주 김선기 교수의 영문 강독, 언더우드(Underwood) 여사의 영어회화, 레이몬드 프로보스트(Lamond Provost) 목사의 영작문 9시간이 있었는데 프로보스트 목사의 영작문은 영어로 성경을 공부하고 중요구절을 외우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