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31년 3월 19일 대구시 봉산동 27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마도 그 당시는 희미한 전등 불빛이 비추는 방, 해산기를 느낀 어머님 곁에서 산파가 땀을 흘리며 출산을 돕던 어려운 시기였을 것이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어릴 적 고향 대구에서 생활 할 당시의 이야기다. 이후 길에서 가방을 든 산파를 만난 적도 있다.
봉산동은 근처에 향교가 있고, 가까이 수성천이 흐르던 아주 조용하고 아름다운 동네였다. 근처에 대구부청, 조선민보사, 대구의학전문학교도 있었다. 저 멀리 팔공산에 걸려 있던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 지금도 나는 그때 고향의 정취를 잊을 수 없다.
어린 시절 나는 친구들과 함께 동네를 뛰놀면서 수성천에서 멱을 감거나 잠자리를 잡는다고 앞산을 헤집고 다녔다. 동촌사과밭에서 사과를 배부르게 먹기도 하고, 즐겁게 웃던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그 당시는 대부분의 집들에 감나무와 포도덩굴이 걸쳐 있는 집이 많았는데 과일향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손기정의 베를린 마라톤 제패를 상영하던 만경관은 이제 어떻게 되었을까. 그 앞에는 대구우편국, 경찰서, 식산은행, 경북도청도 있었다.
무엇이라 표현하기 어렵지만 이것은 비단 나만의 추억이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은 유소년 시절의 공통된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최근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냇가에서 멱을 감거나 나무에 오르는 것, 미꾸라지와 곤충을 잡으며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논다는 이야기가 실감나지 않을지 모른다.
최근 대구유니버시아드나 태권도대회 참관 차 고향을 방문해 보니 너무 바뀌어 예전의 풍경들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고향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남아 있고, 그 추억들이 가끔씩 나를 예전의 고향으로 데려다 준다. 어떠한 지위도, 명예도, 부도 필요치 않고 의미도 없었던 정든 나의 고향이다. 우리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동명면도 이제는 대구시 동명구가 되었다. 대구에서 40리 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나는 지금까지의 나의 인생을 돌이켜보고 동시에 새로운 도전을 그리곤 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다 생각한대로 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회상해 보면 지금 나의 성공은 최고라 여겼던 목표를 조금씩 수정하고,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들이 의외로 좋은 결과를 초래한 덕분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살고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이 나를 오늘의 나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일은 어떤 길이 열리게 될까? 내 여정은 인생을 마무리할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
인생은 최후까지 살아보고 나서야 진정한 맛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훌륭한 분도 인생의 최초와 중반 그리고 만년의 내용이 전혀 달랐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과연 이 나라의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고령화시대 한국의 많은 분들이 그렇게 되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다. 나는 지금 여기서 잠시 나의 과거를 뒤돌아보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