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들어 많은 국가가 자국과 지역 발전을 위하여 올림픽과 대륙별 종합대회인 팬아메리카(Pan-am) 게임, 아시아 경기대회, 아프리카 게임 등을 자국에 유치하는 데 힘을 쏟았다.
유치 신청에 이어 구체적인 유치 활동 기간은 최저 2-3년이 걸리고, 재정적으로 수천만 달러 이상의 유치 홍보비를 들이지만 이것은 유치에 실패한다고 해도 그 도시를 세계에 알려 홍보에서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우리도 ’86년 아시아 경기대회에 이어서 ’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세계에 한국의 모습과 이미지를 알리는 효과를 얻었으며, 아울러 세계로 도약하는 절호의 기회를 마련했다.
일본도 ’64년 도쿄 올림픽을 거쳐 ’94년에는 아시아 경기대회 사상 처음으로 지방 도시인 히로시마에서 아시아 경기대회를 개최했다. 이때는 15억 달러라고 하는 거액의 자금을 투입했다. 신공항 건설, 경기장과 호텔 등을 새로 지었고, 히로시마 시민들의 의식을 국제적으로 개혁시켰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에 이어 부산에서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과 시민 주도로 대한올림픽위원회(KOC)와 협력하여 2002년 부산 아시아 경기대회의 유치에 성공했다. 이는 부산이 2002년 아시아 경기대회를 유치함으로써 부산이라는 도시를 세계에 알릴 계기를 마련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부산은 아시아의 중심 도시로 성장함과 동시에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은 시대와 여건이 달라 적자를 많이 본 대회로 알려진다.
부산과 함께 아시아 경기대회 유치 경쟁에 나섰던 도시는 대만의 가오슝과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였다. 자카르타는 과거 몇 번이나 유치에 실패했지만, 강적 중의 한 곳이었다. 나는 자카르타를 두 번이나 방문하여 밥 핫산 IOC 위원(산업 장관)과 만나 그에게 협력을 요청했다.
“2002년에는 부산에서 아시아 경기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자카르타는 다음에 신청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때에는 우리 한국도 전격적으로 협력할 것을 약속한다.”
다행히도 자카르타는 마지막 단계에서 유치신청을 포기했다. 하지만 대만은 가오슝을 개최지로 결정하고 유치 신청을 했다. 대만은 그때나 지금이나 2개의 중국인가, 하나의 중국인가의 문제를 놓고 정치적으로 많은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시아 올림픽평의회(OCA)의 43개 회원국과의 외교관계도 미해결 상태였고, 외교적으로 문제가 많은 것도 불리한 조건이었다.
대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대대적인 유치 활동을 전개했다. 대만은 그동안 축적한 외화 보유고를 자랑하며, 아시아 경기대회 개최의 균등한 지역 배분을 소리 높여 주장했다. 물론 이것은 두 개의 중국을 표방하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대만 측의 일종의 정치적인 공세라고도 볼 수 있었다.
많은 OCA 회원국들을 가오슝에 초대하는 등 물량 공세를 펴는 한편 OCA에 대해서도 박물관 건립 비용의 일부로 20만 달러를 기증한다든가, 15만 달러 상당의 컴퓨터를 기증한다든가, 또는 아시아 경기대회 유치에 성공할 경우에는 500만 달러를 OCA에 기부한다고 하는 등의 막대한 선심 공세를 폈다. 대만은 결코 중도에서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완강한 자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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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년 OCA총회에서 부산 아시안게앰 유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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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대만은 60명이 넘는 유치 사절단을 아시아 43개 국가에 파견했다. 그리고 한국에는 30 대 10의 표 차이로 대승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1995년 3월 23일 IOC 솔리대리티(Solidarity:결속, 단결) 기금으로 가오슝에서 OCA 43개국의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사무총장회의가 개최되자 아시아 경기대회 유치 경쟁 유사 이래 처음으로 유치 운동이 과열화하는 현상을 보였다. 이 단계에 이르자 지금까지 보고만 있던 중국이 본격적으로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장관, 차관, 대사 등이 NOC 멤버를 동원하여 각국을 순방하며 가오슝 유치 반대 작전을 전면적으로 펴기 시작했다. 이때 중국 장관 겸 NOC위원장은 우 샤오주(Wu Shaoju)고 IOC위원 허전량(He Jenliang)이었다.
당시 나는 부산 시민유치위원회의 우병택 위원장과 협력하여 부산 유치를 향한 다음과 같은 작전을 수립했다.
1. KOC와 부산유치위원회의 강력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부산 시민의 열의가 식지 않게 한다. 사실 부산 시민들의 열기는 대단했다. 부산 출신인 김영삼 대통령의 관심도 대단했다.
2. 내 자신의 국제적인 인맥과 지금까지 발생한 이해관계를 철저히 이용, OCA 위원장 100명 정도를 KOC 위원장 명의로 초청하여 부산을 방문하도록 한다. 이때 부산은 너무 안 알려져 있고 온 사람도 없었다.
3. ’97년 동아시아 대회를 부산에 유치, 동아시아대회위원회(EAGA) 총회를 3월 부산에서 개최하게 한다. 이로써 EAGA 10개국 중에서 북한을 제외한 모든 회원국이 부산과 친근하게 될 기회를 만든다.
4. OCA 총회를 ’96년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는데 ’96년 9월에 예정된 개최지 신청을 ’95년 5월로 앞당긴다. 그 이유는 IOC 위원장인 사마란치 회장이 5월에는 시간을 낼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 동아시안게임은 중국이 베이징 유치 전략의 하나로 창설한 것으로 부산은 1997년에 아시안게임 연습경기가 되어 경험을 많이 쌓았다.
5. OCA 회장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다. 당시 OCA 회장단은 대만 측과 비교적 가깝게 지내왔기에 이들을 우리 측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부산 유치 활동이 유리하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6. 내가 중국과 일본, 인도네시아 등의 OCA 강대국을 수차례 방문하여 의사 타진을 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또한 일본에 대해서는 OCA 부위원장 자리를 양보한다는 약속도 했다.
7. 필리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카타르 등등 15개국과 KOC가 체육교류 협정을 맺는다. 또한 KOC, 부산 시장 등이 10개국을 예의상 방문하기로 했다.
8. IOC 위원장을 OCA 총회에 맞춰서 초대하여 IOC 위원장과 함께 인도네시아, 중국, 캄보디아 등을 방문한다.
9. 내가 국제 스포츠계에서 얻어 낼 수 있는 각종 이익들을 관련 국가들에게 나누어 준다. 이에 따라 필리핀은 세계 태권도선수권대회의 개최권을 주고, 애틀랜타 올림픽 TV 방영권을 100만 달러에 계약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엘리잘드(Elizalde) IOC위원은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에 대해서는 애틀랜타 올림픽 TV 방영권을 1억 달러가 안 넘도록 9,950만 달러에 체결할 수 있도록 협력을 해 주었고 또한 아시아방송연맹(ABU) 방영권료를 500만 달러로 체결토록 했다.
10. OCA 회원국을 각개격파 식으로 만나 득표 활동을 전개했는데 그 중에서도 아랍권 국가의 표를 분산시켰다.
11. 중국과 연대하여 득표 활동도 전개하기로 했다. 이미 중국에 대해서는 실패한 1993년 베이징 올림픽 유치 때 많은 지원을 해 준 바가 있었다. 중국은 그것이 바탕이 되어 2000년 베이징 올림픽에 성공했다. 스포츠 외교는 그런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