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6년 10월 17일 스위스 로잔(Lousanne)에서 열린 제91차 IOC 총회에서 IOC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예전에는 IOC 위원으로 선출된 다음 해에 비로소 취임을 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서울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사마란치 위원장은 내게 총회에서 대기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는 내가 선출됨과 동시에 취임 선서를 하게 했고, 곧바로 정식으로 임무 수행이 가능한 IOC 위원이 되어서 서울대회 준비에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하라고 부탁했다. 이때는 IOC 조정위원회(Coordination Commission) 제도가 없어 IOC위원장이 직접 부위원장인 나에게 지침을 내리고 협의하는 때였다.
나는 IOC 위원으로 선출된 후 좌우에는 올림픽기가 휘날리는 총회장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이 선서문은 영어 또는 프랑스어로 하는데, 나는 영어를 선택했다.
선서문은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 본국에서는 IOC를 대표하는 영광이 주어졌기에 IOC 위원으로서의 임무를 인정하고, 나의 능력을 최대한도로 발휘하여 올림픽 운동에 봉사하며, 어떠한 정치적, 상업적, 인종적, 종교적인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올림픽 헌장의 원칙과 IOC의 결정사항을 존중하며, 아울러 존중함을 보증한다고 선서합니다.”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 뒤에 1988년 9월 15일 나는 서울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4년 임기인 집행위원에 선출되었는데, IOC 위원이 되고 나서 만 2년도 되지 않은 최단기간에 집행위원이 된 최초의 위원이 되었다.
집행위원 선거는 3시간 이상 계속되었다. 공석이 된 두 자리를 과반수의 표결로 결정하게 되어 있었는데, 6명의 후보 중에서 선출된 사람은 나와 23년간이나 IOC 위원 활동을 한 스웨덴의 에릭슨(Ericson) 위원이었다. 그 당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미국의 헬믹(Helmick) 위원은 남미의 후보자 세 사람을 지지한다는 명목으로 후보에서 사퇴했다.
내가 집행위원에 출마할 당시, 몇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아프리카의 모 위원은 나를 지지한다고 말을 하면서 어느 방송국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내가 IOC 위원이 되고 난 뒤 얼마 되지도 않는데 집행위원에 출마한다고 하며 나를 비난하는 것을 듣기도 하였다. 반대로 킬라닌(Killanin) 명예위원장은 사마란치 위원장에게 “김운용 위원은 아마 이길 것입니다. 내기를 해도 좋습니다”고 호언하기도 하였다. 영국의 앤 공주는 내가 인사를 겸해 그녀를 방문하자마자, 첫마디가 웃으면서 “나는 왕족이기 때문에 내게 로비 활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로비가 아니고 알려주는 것이라고 화답을 했다. 그 후 서울 올림픽 기간 중에는 앤 공주의 보디가드들이 무기를 휴대하고 있었기에 우리나라 경호원들과 약간의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나중에 그들에게 무기휴대를 허가하고 차량 한 대를 지원해 준 결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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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 도쿄 IOC 총회에서 사마란치 위원장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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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C 위원은 위원장의 추천에 의해 집행위원회를 거쳐 총회에서 선출된다. IOC 위원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국제연합에서 활동하는 대사들이 각각의 국가를 대표하여 국제연합에 파견된 사람들이라면, IOC 위원은 IOC를 대표하여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추천권은 각국에 있다고 하기보다는 IOC 안에서 스포츠 발전에 공로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들을 추천하여 해당 국가와 협의를 하는 단계를 밟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IOC 헌장은 IOC 위원이 모든 정치적, 금전적인 압력으로부터 독립해서 행동하는 것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IOC 위원이 IOC를 대표해서 활동한다고 해도 역시 그 사람은 하나의 국가에 소속된 국민인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자국의 국익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나 역시도 물론 그렇다. IOC 위원이 된 이후에 나는 아시아 경기대회와 서울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였다. 올림픽 최대의 재정원이 되는 TV 방영권 교섭을 시작으로 대회 준비, 경기, 그리고 대외적인 제반 조건을 짜 맞추기까지 나는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며 일을 진행하였다. 내가 외교관으로서 국가를 위하여 일할 수가 없게 된 허무함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왠지 모르게 더욱 더 내 일처럼 했던 것이다.
선진국에 들어가는 길목에 서 있는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해서 측면 지원이 가능한 한 사람의 IOC 위원으로서 내 나름대로의 할 일이 많이 있었고, 더구나 해야만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많이 있었다.
2001년 1월 기준으로 IOC 회원국은 199개 국가가 되었다. 지금은 206개국이다. 이들을 대표하는 IOC 위원은 115명뿐이다. 즉 회원국 중에는 위원을 내지 못한 국가가 더 많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IOC 위원은 이 지구상에서 얼마 남지 않은 지위 중에서도 그 수가 적은 일종의 명예로운 지위인 것이다. 그러나 IOC도 1999년 개혁 안에 의해 재임위원 70명, IF 대표 15명, NOC 대표 15명, 선수위원 15명으로 구성되게 되었다. IF와 NOC는 재임기간 중에 한한 당연직이다.
IOC 헌장은 IOC 위원에 대해서 ‘상당한 지위, 고결한 품성과 바른 판단력, 실천력을 갖고 있으면서 올림픽 정신이 투철한 인사이어야만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돈이나 권력으로도 살 수가 없는 것이 진정한 IOC 위원의 지위이다. 무엇보다도 세계 체육계를 위해서 지대한 공헌을 하지 않으면 안 되며, 스포츠를 통해서나 세계 평화를 위해서 일한 사람만이 가능하다. 영어와 프랑스어에도 물론 정통하여야 한다.
IOC위원은 대략적으로 어학, 품격, 실력, 업적, 국력의 복합체이고, 그 나라에서도 존경받는 사람들이라고 보아도 좋다. 재벌도 있고 왕족들도 있으며 장관, 수상도 있다. 왕족 중에서는 영국의 앤 공주, 룩셈부르크 국왕, 모나코의 알버트 왕자, 네덜란드의 오렌지 왕자, 그리스의 콘스탄틴 국왕 등이 있으며 수상급의 사람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