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라 남아프리카 대통령과 뜻하지 않은 인연으로 몇 번인가 만날 기회가 있었다. 처음으로 이 분을 만났던 것은 로빈 아일랜드에 있는 형무소에서 27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풀려난 직후였다. 1990년 만델라는 오랜 옥중 생활을 마치고 난 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스위스로 초청해 몬트레에 있는 호텔 형식의 병원에 2주 정도 요양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만찬장에 동석할 기회가 있었다. 만델라는 그렇게 오랫동안 옥중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은은한 미소와 온화한 품격이 정말로 인상적이었고, 장래의 비전에 대해서 청년과 같은 정열로 설명하는 것을 듣고서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 이후 만델라는 자국의 인종차별 철폐운동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나와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만델라 대통령과 같은 버스에 타고 관광을 할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 취임 후에도 요하네스버그에서 그를 3번째 만날 수가 있었으며, 1995년 서울 방문 시에도 그 분을 만날 수가 있었다.
이미 화려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변신을 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케이프타운이 2004년 올림픽 유치를 신청했다. 이를 위해 1997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IOC 총회 때는 만델라 대통령이 올림픽 유치 지원 차 참가했다.
나는 호텔 방에서 그 분과 환담을 했다. 그는 다방면에 걸쳐서 박식했고, 침착하게 우리의 대화를 리드했다. 오랜 옥중 생활 때문에 세상의 일들과 세계사의 조류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세상의 변화를 정확히 읽고 있었다. 정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기에 손색이 없는 분이었다.
만델라 대통령만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지구상에 얼마나 될까? 남아프리카 공화국, 작은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난 만델라는 흑인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여 온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정치 체제를 바꾸기 위해 흑인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1939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변호사가 되었고 만델라는 1944년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가입해서 청년동맹을 결성해 본격적으로 흑인 인권 운동에 앞장섰다.
당시 남아프리카에 있어서 흑인들의 인권은 말이 아니었다. 영화와 소설 등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로 그 참상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비참한 것이었다. 다른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흑인들이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구가하고 있었는데 비하여 남아프리카만이 흑인을 탄압하는 정책이 계속되고 있었다.
소수의 백인들이 다수의 흑인들 위에 군림하는 암흑의 나라 남아프리카. 그 속에서 청년운동가 만델라는 흑인들의 무지를 계몽해 자유를 얻기 위해서 힘을 키우는 데 온 정력을 쏟았다. 체제의 위기를 느낀 백인들은 1956년 만델라를 반란죄로 기소했다. 그는 1962년 종신형을 선고받고 정치범수용소가 있던 로빈 아일랜드에 감금당했다.
감옥에서 만델라는 흑인들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고, 흑인 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흑인 인권 탄압의 상징이 된 만델라는 국제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었고, 국제엠네스티 등의 인권단체로부터 적극적인 응원을 받게 되었다.
석방 후 1991년 ANC에 복귀하여 의장이 되었고 만델라는 그때까지 폭력적이고 과격한 흑인 인권 운동을 평화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지도했다. 인도의 간디가 비폭력 운동으로 영국에 대항하여 자유를 얻는 것처럼 이성적인 인권 획득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만델라가 단순한 흑인 인권 운동가가 아니고 신념을 갖고 있는 평화주의자로서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만델라는 공생을 주장했다. 감정적으로 치닫는 흑인 인권 운동가들에게 소원하기 쉬운 백인들의 인권도 존중하였던 것이다. 오랫동안 억압당해 온 흑인 단체들의 복수심과 원한을 화합의 정신으로 승화시켰다.
백인 지배 시기에 대통령직을 수행하던 데크라크가 흑인들의 인권을 인정해 자유선거를 실시, 대통령직을 만델라에게 양보했던 것은 만델라의 사상이 평화와 화합의 근거를 두고서 인권 운동을 전개했기에 가능했다.
만일 만델라가 집권 후에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였더라면 백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고 안전을 위해서 상당한 저항이 있었을 것이다. 만델라가 말해 준 내용은 감동적이었다.
만델라가 정권을 장악하니 ANC 등의 흑인 무장 단체는 백인들에 대한 복수심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지만 만델라 대통령은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지금, 복수 등의 불필요한 행동에 사용할 시간이 없다고 흑인들을 설득했다. 나라가 안정되니 해외로 도피했던 500억 달러가 넘는 돈이 다시 남아프리카로 돌아왔고, 피폐해진 경제가 소생을 시작했다. 더불어 범죄도 급격하게 줄었다.
대립과 복수심이 만연하던 남아프리카는 급속히 안정을 되찾았으며, 흑과 백은 명실상부한 동반자로서 ‘하나’가 되었다. 만델라는 국가를 안정시키고 나서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방법을 찾았다. 올림픽 유치에 노력을 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중 하나였다.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올림픽을 유치해 세계 평화 증진에 공헌함으로써 남아프리카가 국제사회의 일원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어 했다. 유감스럽게도 올림픽 유치 경쟁에는 실패를 했지만 만델라는 세계 평화와 화합을 추진하는 지도자라는 점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스포츠 세계에 있어서도 만델라는 거인으로의 면목을 여지없이 발휘했다. 남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럭비이다. 만델라는 럭비 시합에 흑인과 백인을 함께 출전시켰다. 남아프리카에서 럭비 시합에 흑인이 백인과 함께 출전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흑인과 백인이 하나의 팀으로 함께 땀을 흘리면서 자연스럽게 융화되었다.
임기가 끝나자마자 모든 직책을 버리고 하야를 한 만델라는 감옥을 출옥한 직후에 몬트레의 병원에서 만났을 때나 대통령직을 그만둘 때에 만났을 때나 항상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만델라 자신이야말로 바로 평화의 상징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