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추석이나 구정과 같은 명절에는 고향을 방문하기 위해 민족이 대이동을 한다. 지구상에 고향을 방문하기 위해서 수백만 명이, 아니 수천만 명이 이동하는 나라는 드물다. 혹시 있다면 중국의 명절이나 유태인 사람들이 추수감사제와 유월절을 보내기 위하여 예루살렘과 성지에 모이는 정도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왜 매년 똑같이 돌아오는 명절에 10시간 또는 20시간 이상 걸리는 귀향길에 비좁은 차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아무런 불평 없이 그것도 매번 고향을 방문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태어나고 성장한 고향이고 부모님들이 계시며, 어려움과 즐거움을 나눠 가졌던 이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상의 묘소가 있고, 슬프거나 외로울 때 올라가서 큰소리로 절규하던 뒷동산과 물놀이하던 냇가와 커다란 당산나무 그리고 초등학교 운동장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 이경이 씨는 전주 이씨로 생가 쪽은 왕족이 많았다. 일본의 귀족으로 편입된 이모나 이모할머니도 있었다. 서울에서 이화여고를 다니다 아버지와 만나 결혼을 하신 후에는 대구에서 생활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자녀들을 데리고 다시 서울로 상경을 하여 다. 당시로서는 가장 현대적인 교육을 받으셨던 어머님은 이른바 ‘신여성’이셨다. 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이 세상에는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이상의 아주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어려서부터 받은 많은 가르침 중에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서양식 테이블 식사 매너였다. 당시는 양식을 만들거나 외식할 기회도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양식 먹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서양식 식사 방법을 전수 받았던 교실은 대구의 대구키네마 옆 경북장이나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선 특급 아까쓰끼열차 안에 있던 식당차에서다. 당시의 식당차는 영화 속에 나오는 장면처럼 서양식 식당차를 그대로 옮긴 것 같은 격조 있고 우아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린 나는 어머니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흔들리는 식당차 안에서 서투른 서양식 테이블 매너에 당황했다. 외교관이 되려고 결정한 시기에 겨우 어머니의 가르침을 깨달았으며, 적극적인 어머니의 조기 교육에 마음속으로부터 감사를 올렸다. 어머니는 또 테니스, 수영, 롤러스케이트도 시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단지 우리를 키우시는 것에만 전력을 쏟으셨다. 어머니는 맹자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했고 밀레의 만종 그림도 집에 걸었다. 어머니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나서야 바르고 진정한 사람이 된다고 하는 신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요즘의 어머니들과 같은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시키는 것보다는 자녀 스스로가 탐구하게 하고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교육 방법이었다. 하지만 단지 곁에서 보고 계시는 것뿐만이 아니라 항상 엄한 가르침을 주셨다.
어머니는 공부만 잘 하면 된다고 말씀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항상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가르치셨다. 어머니는 단지 묵묵히 어머니의 역할을 하시면서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나은 교육이란 특별한 가르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들을 솔선해서 실천하는 것임을 나는 내 어머니를 통하여 배우고 깨달았다.
내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다. 대구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중앙통 12칸 도로에 항상 앉아서 지내는 말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와 외출을 하는데 사람들이 농아인을 다그치고 있었다. 사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상당히 화가 난 것 같았고 흥분해서 그 농아인을 에워싸고 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왠지 무서워졌다. 농아인에게서 배어나는 냄새와 더러운 손을 보면 기분이 나빠 보통 때는 혼자서 그 길을 피해 멀리 돌아가기도 했다.
나는 빨리 그 장소를 통과하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재빨리 사람들 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어머니는 농아인의 멱살을 잡고 있는 사람의 팔을 잡아당겨 풀어 주었다. 그리고는 “이 사람이 어떤 잘못을 했다고 이러십니까? 혹시 무엇을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신체가 건강한 우리가 말도 잘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 폭력을 쓰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불쌍하게 생각하고, 도움을 줄 수는 없을망정 거기에 고통을 준다면 앞으로 이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라고 하는 짓들입니까? 자, 여러분들, 연약한 사람 괴롭히지 말고 바쁘실 테니까 다들 자기 일터로 돌아가세요.”
나는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화를 입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어머니에게 대들지 않고, 모두가 말없이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 이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 그 농아인은 우리 모자를 만나면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인사를 했다.
용감하시고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시며 인덕이 많으셨던 어머니는 강한 분이시기에 마음속에 숨겨둔 아픔도 많으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1968년 6월 향년 68세로 이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를 먼저 보내시고 일제 말기와 해방통에 삼십여 년을 여자의 몸으로 혼자서 자식들을 키우시며 생활해 오신 고난의 인생을 조용히 끝마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당시 여섯 살이던 어린 자식이 드디어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의 여생을 보살펴 드릴 수가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는 홀연히 아버지 곁으로 떠나셨던 것이다.
‘효도를 하고프나 부모님은 이제 없다’라는 말이 있다. 자식이 부모의 애정을 깨닫고, 부모를 보살필 수 있는 여유가 되었을 때에는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시고 없다는 속담처럼 되고 말았다.
어머니의 병환이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미국에 출장을 가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지도 못하는 불효자가 될 뻔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으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