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체육회 회장에 선출되어 (1회)
  제1장 대한체육회 회장시절

한국 체육의 총본산이라 불리는 대한체육회는 일제하인 1920년 조선체육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일제 식민치하에서 민족의 웅혼한 기상을 되살려 독립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체육회의 창립정신에는 독립운동의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일본체육회의 이름은 체육협회라고 불리지만 대한체육회는 “협”을 뺀 조선체육회로 명명한 것이다.
 
일제치하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던 조선체육회는 중일전쟁 이후 태평양전쟁으로 치닫는 일본의 강제적인 명령에 의해 해산의 아픔을 겪기도 했으나 해방과 더불어 대한체육회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한국 체육의 중흥을 위해 앞장 서온 대한체육회(KSC)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대한학교체육위원회 등의 탄생과 더불어 사분오열되는 위기를 맞았으나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의 3개 체육단체 통합령에 의해 하나로 통합돼 명실공히 한국 체육의 중추적인 핵으로써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대한체육회 회장의 자리는 우리나라 체육인들 모두를 대표한다는 의미에서 상징성이 큰 인물들이 맡아 왔었다. 제1공화국부터 제5공화국에 이르기 까지 정치적 파워가 대한체육회장 자리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 신익희, 이기붕, 민관식, 김택수, 노태우, 박종규, 정주영 등 당시의 실세들이 대한체육회장직을 수행한 것만 봐도 대한체육회장의 위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93년 초 많은 체육인들이 내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해 줄 것을 간청했다.

그들 생각은 ’86아시안 게임과 ’88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로 한국 스포츠의 국제적 위치가 많이 상향되었지만 아직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의 감각은 한참 뒤떨어져 있어서 내가 회장을 맡는다면 ’86,’88 양 대회의 성과를 스포츠 외교력 강화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대한체육회장은 민주화의 물결에 따라 경선으로 치러졌다. 김종하 회장 이후 럭비선수였던 김종령 회장이 첫 민선 회장으로 당선되었으나 김종렬 회장은 인격적으로나 스포츠에 대한 애정은 남다른 분이었지만 국제적인 감각은 다소 무딘 분이라는 평이었다.

체육인들은 세계 스포츠계의 흐름을 앞서 타면서 한국을 세계 스포츠의 메카로 발돋움시킬 회장을 찾고 있었던 것이었고 그 조건에 가장 합당한 적임자로 나를 추천한 것이었다.

이미 나는 ’74년에 대한체육회 부회장과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명예총무를 역임했으며 대한올림픽위원회 명예위원장을 맡고 있어서 국내 스포츠 기구의 메커니즘을 잘 알고 있으며 국제체육기구에서도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터라 양쪽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을 체육인들이 높이 샀던 게 분명했다. 나는 또 71년부터 대한태권도협회장으로서 국기원을 건립하고 세계태권도연맹을 창설하여 국기 태권도의 세계화에 전념하고 있었다.

▲ 대한체육회장, KOC위원장 이취임식 (1993. 2.26)

그때 나는 IOC 부위원장이며 텔레비전 방송분과위원회 위원장, GAISF(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어서 세계 스포츠계를 지도하는 입장이었는데 KSC, KOC까지 맡는다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었다.

대한체육회 회장은 당연히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과 겸임하게 되어 있는데 무보수 비상근 자원봉사자이지만 절대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자리여서 시간을 많이 뺏기며 전 체육인을 대표하는 자리라 국내 정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자리이기에 선뜻 결정하기 힘들었다.
 
사마란치(Antonio Samaranch) IOC위원장이 나에게 “내가 IOC위원장이지만 스포츠 관련 일은 40% 밖에 안 되고 IOC를 위해서 접촉하고 해야 할 다른 일이 60%다. 김 위원장도 마찬가지고 외무장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전 세계를 돌며 스포츠 외교를 펼치고 태권도의 세계화를 추진하며 국제체육기구의 수장을 맡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 한국스포츠를 세계 정상에 끌어올리는 일이며 국민들에게 스포츠를 통한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 주는데 있지 않은가.

나는 체육인들의 여망을 받아들여 경선에 입후보했고 93년 2월 23일 대한궁도협회 회장인 신동욱 씨와 경선을 하여 26대 13으로 대한체육회 회장직에 선출되었다. 또 그 다음날 KOC위원장에 당선되었다.

그렇게 출발한 대한체육회장 겸 KOC위원장!

무보수, 비상근, 명예직인 대한체육회장이란 생각하기에 따라서 편안하게 명예만 챙기면 되는 자리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대한민국 체육의 수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막중하고 많은 자리이기도 했다.

내가 대한체육회장을 맡을 무렵 우리나라 체육은 한마디로 과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이었다.

’86,’88 양 대회의 성공적 개최와 놀라운 경기력 발휘로 국민들의 체육에 대한 기대는 지나치게 인플레이션 되어 있었지만 모든 체육시스템은 아직 개발도상국 단계를 벗어나기 못한 상황이었다. 스포츠 외교력이나 국제적인 감각은 선진국 중의 선진국만이 가능하다는 올림픽 개최국다운 면모를 아직 채 갖추지 못했다.

해야 할 일이 하도 많아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연했다. 우선 점차 꺼져 가고 있는 ’86,’88 양 대회의 열기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경기력 향상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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