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환경의 대대적 개선과 획기적인 선수복지후생의 전환 (2회)
  제1장 대한체육회 회장시절

민관식 회장 주도로 1966년 문을 연 태릉선수촌은 내가 대한체육회장에 선출된 ’93년도에는 이미 27년이나 지나 낡고 허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구 한국 체육대학교 자리에 위치해 있는 선수 숙소도 비좁고 200여 명 밖에 수용할 수 없는 규모였다.
 
요새는 스포츠 군비 경쟁시대다. 국가의 어마어마한 투자 없이는 올림픽도 유치할 수 없고 금메달 따기도 힘들다. 올림픽 상위 10개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한국, 일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가 거기에 속한다.

엘리트 체육을 위해서는 조직, 재정, 훈련시설 선수 발굴 육성, 사후 커리어 지원, 코치 육성 지원, 국내 국제대회, 의과학 접목 등인데 그중 훈련시설은 이제 모든 나라가 앞다투어 증강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늘 다른 나라보다 앞서려고 노력했다.

’95년 관계부처를 설득하고 백방으로 뛰어다녀서 선수 숙소 신축계획을 확정짓고 이듬해 완공했다. 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선수 숙소는 일류 호텔급은 아니더라도 대학기숙사 이상의 수준으로 지도자와 선수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었다. 이름도 올림픽의 집이라고 명명하여 선수들의 사명의식을 고취시켰다. 미국 선수촌이 하루에 4천 칼로리 급식을 한다 하여 우리도 같은 수준으로 올렸다. 숙소가 완공되자 이제는 훈련장이 문제로 떠올랐다. 훈련장 역시 낡고 시대에 뒤떨어져 있었다.

우선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이 유망한 종목을 선정해서 대대적인 훈련장 보수 및 신축에 나섰다. 대한체육회의 예산은 우리 국민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넉넉하지 못했다. 아직 마케팅도 전무 상태라 서서히 마케팅도 시작했다. 기획예산처, 문화체육부(문화관광부의 전신) 등의 관계자와 만나 숙소, 경기장의 신개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일일이 예산을 따내야만 했다.
 
실내 육상장이 쓸모 없이 있었다. 보다 효율적인 실내 체육관으로 짓기 위해서 핸드볼, 배드민턴 경기장으로 개조했다. 핸드볼, 배드민턴은 그곳에서 국제대회를 열었다. 이것은 96년 아틀랜타 올림픽 갔다와서 김영삼 대통령이 예산 조치를 후원해주었다. 

축구장은 많은데 성남 하키장이 다른 목적으로 전용 되면서 하키는 연습장이 없어졌다. 태릉 축구장을 개조해서 하키 연습장으로 만들었다. 새 인조잔디를 깔았고 다목적 훈련장인 개선관의 기초를 닦아 역도, 체조, 펜싱, 탁구, 태권도 훈련장을 마련하는 토대를 세웠다.

그 밖에도 재임기간 중에 특수 훈련장 건립에도 남다른 신경을 썼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하계스포츠를 ‘86, 88’ 양 대회로 세계적 수준까지 올랐지만 동계종목은 미답(未踏)의 개척지나 마찬가지였다. 스케이팅 선수들에게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가 여름철에 마땅히 훈련할 장소가 없다는 것이었다.

애틀랜타 올림픽의 여세를 몰아 정부 관계자를 만나 야외 스케이트장을 실내 스케이트장으로 만들었다. 400m 트랙을 갖춘 전천후 훈련장, 세계에서 8번째의 400m 링크의 국제 스케이트장은 그렇게 만들어 선수 훈련시간 외에는 시민에게 개방했다. 그곳에서 스플린트 스케이트 세계대회를 열었을 때, 칭콴타 세계빙상연맹(ISU) 회장이 와서 보고 놀라며 국가별 올림픽위원회(NOC)에 이런 스케이트장을 가진 데가 세계에 없다고 말했다.
 
무주 점프 타워도 당시에는 혁신적인 훈련장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만약에 그때 무주에 스키 점프장을 짓지 않았다면 타르비시오 유니버시아드대회 스키 점프 2개의 금메달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또 단 한명의 스키점프 선수도 육성하지 못했을 것이고 첫 출전한 솔트레이크 올림픽 단체전에서 8위를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수영장을 개조해 만든 실내 링크장도 대대적인 보수를 했다. 아이스하키, 쇼트트랙, 피겨 훈련장으로 사용되던 실내 링크는 링크와 천정간의 높이가 높아 습기가 많이 차고 빙질이 좋지 않았다. 난방도 안 되고 사고가 많았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우수한 경기력을 갖출 수 있는 훈련을 할 수 있겠는가. 아이스파이프를 새로 설치해서 링크 상태를 개선했으며 제습기를 배로 설치해서 습기를 최대한 줄였다.

▲ 태릉국제스케이트장 증축공사 기공식 (1996.)
 
97년도 일이다. 우리나라 육상선수들이 중국 곤명이라는 곳으로 전지훈련을 간다는 얘길 들었다. 왜, 우리나라에서 훈련하지 않고 곤명까지 가느냐고 물었더니 고지대 훈련 때문이라고 한다. 고지대에서 훈련을 하면 훈련효과가 평지에서 하는 것보다 적게는 2배 이상의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곤명까지 가서 훈련을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나라에 고지대 훈련을 할 수 있는 적격지를 찾아 고지대 훈련장을 짓기로 했다. 또 곤명에 갔다온 황영조 선수가 그곳은 다리 부러지기 딱 좋다고 한 말도 플러스로 작용했다.

그러나 1,000m 이상 높이에 선수촌을 지을 만한 땅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고르고 고른 끝에 최종적으로 결정된 곳이 함백산 정상 1,300m 고지였는데 그곳은 지반도 약하고 바람이 매우 세찬 곳이었다. 공사 또한 난공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년여의 힘든 공사 끝에 98년도 우리나라 최초의 고지대 훈련장인 태백선수촌이 문을 열었고 지금도 복싱, 육상, 사이클 등 심폐기능을 높이는 훈련장으로 활용돼 해외 고지대 전지훈련으로 인한 국고 손실을 막고 국내에서 편안하게 훈련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을지로에 한국 체육관이란 곳이 있다. 50년대부터 사용되어 온 한국 체육관은 격투기 종목과 역도 선수들의 산실이었지만 너무 낡고 협소해서 더 이상 사용이 불가능했다. 원로 체육인들의 보금자리와도 같은 곳이긴 하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흉가 같은 곳이었다.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 곳 부지를 감정원의 평가를 받아 최대한 높은 가격으로 팔고 하남에 새 땅을 샀다. 현재 그곳에는 테니스장 7면을 지어서 꿈나무 테니스 선수 및 지역 테니스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데 부지 값도 수 배가 올라서 대한체육회의 재산 증식에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

체육회에서 내가 꿈꾸고 계획한 것을 시행하려고 하면 참으로 많은 문제가 뒤따른다. 물론 예산 문제다. 체육회가 재정 자립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발적이며 능동적으로 일을 추진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난 그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해 하나하나 실천해 나갔다. 선수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 수당과 부식비를 인상하고 일일 급식 칼로리를 높였다. 80년대 초부터 동결된 메달리스트의 연금도 인상시켰으며 그들을 격려하기 위한 메달리스트의 밤도 자주 개최했다.

대한체육회장에게는 월 250만 원, 1년 총 3,000만 원의 판공비가 나오는데 난 10년 가까이 그것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다가 명절 때 직원들의 상여금으로 지급토록 했다. 또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금메달의 경우는 1만 불, 은메달 5천 불, 동메달 3천 불의 특별 격려금을 마련해서 메달획득자들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대한체육회 회장에 선출되어 (1회)
  한국스포츠의 국제경쟁력 제고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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