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진(白斗鎭) 파동 (제66회)
  제10장 유신독재시대

해가 바뀌어 1979년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득표율에서 보듯 야당은 힘을 얻고 여당은 밀리게 됐으니, 10대 국회는 3월 개원 초부터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백두진(白斗鎭) 파동’이 일어난 것이다.

민심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공황당에서는 국회의장 후보로 유정회 출신인 백두진 의원을 내정했다.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국민이 뽑은 의원 중에서 뽑아도 시원찮을 판국에 유정회 출신이라니. 당연히 야당 쪽에서는 거세게 반대하고 나왔다.

“국민의 직접 선출에 의하지 않고 대통령이 지명한 유정회 의원이 국민의 대표성이 있다고 보는가? 이는 국회를 무시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불만을 품은 신민당은 의장 선출 때 집단 퇴장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물론 공화당 내에서도 양식 있는 의원들은 백두진 씨가 내정된 데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백두진 씨가 국회의원으로 내정된 데는 차지철 경호실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문에 따르면 백두진 의원이 차지철 실장에게 찾아가 의장 운동을 했고, 차지철 실장이 박 대통령에게 강력하게 추천해 이뤄졌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백두진 의장 선출은 야당 측에서 최고위원과 원내총무만이 본 회의에 참석해 반대하는 해프닝을 빚은 끝에 간신히 통과됐다. 부의장으로는 여당에서는 민관식 의원이, 야당에서는 고흥문 의원이 선출되었다. 개원 초부터 국회는 이처럼 파행을 거듭했기에 3선으로서 와신상담 8년 만의 등원이었지만 나는 우울하기만 했다.

‘왜 이렇게 정치가 어려워지는가. 여도 야도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을 이렇게 무리해 가면서까지 꼭 의장으로 선출해야만 하는 것일까? 강경은 강경을 낳고 부작용을 일으키는 법인데, 백 의장이 아니면 의장 할 사람은 없는 것일까. 왜 정치가 이렇게 각박해지고 이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일까?’

▲ 1979년 8월 1일 장택상 씨(정치가) 추도식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는 윤치영 김영삼 백두진 정일권 씨(왼쪽부터).

나는 끝없는 회의에 빠지게 됐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는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끝까지 할 말을 당당히 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렇게 하는 길만이 동맥경화증에 걸린 공화당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3월 24일에 열린 제7차 국회 본회의에서 경제 및 사회 분야 대정부 질문자로 내가 선정된 것이다.

최규하(崔圭夏)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들을 출석시킨 가운데 열린 이날 본회의에서 나는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입장에서 발언의 포문을 열었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외국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자주의식,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자립경제, 서민 대중을 위한 정책과 정의구현 등 근본이념에 공감해 민주공화당에 입당한 이래 오늘에 이르렀지만 과연 공화당이 서민 대중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스스로 자성하는 바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의석과 국무위원석은 조용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그것은 최근 부가가치세제를 처음 실시할 때 원외의 정책위부의장으로 지켜본 결과 남덕우(南悳祐) 전 부총리와 김용환(金龍煥) 전 재무부 장관이 나라에 기여한 바도 많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때쯤부터 의석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야당 쪽에서 “옳소!” 하는 소리와 “잘한다!” 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난 아랑곳하지 않고 내 의견을 계속 이어갔다.

“난 선거가 실시되기 얼마 전에 부가가치세와 증권거래세의 부당성을 지적했으며, 우리나라 실정으로는 그 실시 시기도 다르다는 견해를 폈으나 정부는 당의 의견을 무시하고 기어이 강행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장관들이 모든 정책을 미리 결정해 대통령 결재까지 받아놓고서는 여당은 그저 따라오기만 하라는 식으로 밀어붙이기만 하니, 지난번 선거 결과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선거 결과는 분명희 공화당이 1.1% 포인트 진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발언하면서 의석을 둘러보았다. 야당 의원들은 자신들도 감히 못하는 발언을 내가 하자 “옳소”를 연발하고 있었고, 공화당 의원들은 놀란 표정이었으며 당 간부와 중진급 의원들은 얼굴마저 창백해져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내가 연설하는 동안 좋아하던 신민당 의원들에게도 일침을 가했다.

“신민당도 너무 좋아하지 마시오. 이번 선거 결과는 국민들이 신민당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기겠다는 생각보다는, 공화당의 정책에 대한 반발이 표로 나타난 것일 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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