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장으로 취임한 며칠 후인 4월 16일 교련반대(敎鍊反對) 데모가 있었고, 4월 20일에도 데모가 벌어졌다. 당시의 특징은 문리대(文理大)와 법대(法大)가 주동이 되고 의대(醫大)가 가담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대부분의 경우 3대학이 함께 행동을 하는데 대체로는 문리대(文理大)와 법대(法大)가 앞장선다.
한번은 2층에 위치한 학장실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려니까 정문을 박차고 대학로(大學路)로 나오면서 데모를 하던 문리대 법대학생들이 "의과대학 새끼들아, 너희들은 피도 없느냐"고 마이크를 통해 외친다. 그랬더니 멀리서 보고만 있던 의대생들이 가운을 입은 채 데모대열에 끼어든다. 젊은 학생들의 기분으로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급기야 5월 20일에는 서울대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으며 의과대학은 5월 30일부터 휴강에 들어갔다. 그 후 72년 11월 27일에도 데모가 일어낫고 73년 10월 22일에는 휴강 사태가 벌어졌다. 10월 26일에는 총장·부총장·학생회장이 내방하여 함께 대책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언제나 그렇지만 긴급 교수회의가 소집되어 지혜를 짜던 일들이 떠오른다. 그해 11월 23일에는 학생에 대한 경고문이 발생되는 등 일련의 조치가 취해졌다.
74년에 들어와서도 학생들의 소요사태는 계속되었다. 특히 4월과 10월에 심하였다. 10월 18일에는 과제처리일(study day)이 선언되었고, 11월 19일에는 휴강이 선언되었다. 1970년에서 80년에 걸쳐 대학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 중 하나가 '과제 처리일'또는 '과제 학습일'이었다. 72년부터 '방대한 학습량을 자율적으로 습득토록 하기 위해' 학기 중 일정기간 동안 실시 되어온 제도이다. 면학분위기 조성방법의 하나로 과제물 부과를 계속 권장하는 것이 문교부의 방침이기도 하였는데 그렇다고 과제 처리일의 시기가 규정으로 정해진 바는 없고 대체로 학생들의 동향에 따라 편의적으로 실시된 것이 사실이다.
1970년대 대학가에서는 1학기의 4월 3일, 4월 19일, 5월 16일과 2학기의 10월 17일을 전후(前後)하여 학생집회가 집중하였고, 학교 당국에서는 위 기간을 전후해서 중간고사 일정을 조정하거나 과제 처리일로 정하여 사실상 휴강을 하는 것이 상례였다. 휴강이 장기화되면 그에 따르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보강을 해야 하며 그렇지 않고서는 학점취득이 어려워진다. 방학 동안에 쉬지도 못하고 교수나 학생이 고생을 하는 예도 간간히 있었다.
75년에는 국제정세가 급변하였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떠났고, 공산월맹(共産越盟)에 의해 베트남이 공산화되었다. 교수들은 75년 5월 2일 '난국수습을 위한 우리의 결의문'을 발표하였고 5월 9일에는 서울대학교 안보 궐기대회가 열렸다. 이어서 5월 14일에는 보직 교수들에 대한 안보교육이 실시되었다.
75년 9월 19일 교수회의에서는 학생들의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한 분담(分擔) 지도교수제(指導敎授制)가 채택되었다. 일반 교수들에게 학생지도 책임을 맡기는 한편 보직교수와 상임지도위원 및 서클 지도교수는 특별지도를 하도록 부탁하였다. 교수회의를 매월 1회 이상 개최하고 일련의 일들을 평가한다는 것도 결정되었다. 지금은 추억담의 하나로 생각되지만 전 직원 동원체제를 만들어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대비토록 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나는 학장생활 6년 동안 학원문제로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교육·연구·봉사라는 3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력을 투구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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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신 첫 반대 시위 / 1973년 10월2일 서울 동숭동 서울대 문리대 캠퍼스에서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서 처음으로 학생들이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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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도 있었다. 1972년 유신헌법(維新憲法)의 제정으로 집권강화의 길을 연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일부 학생들과 재야세력의 반 유신 · 민주화운동을 제동걸기 위해 1974년부터 75년 사이에 긴급조치 1~9호를 잇따라 선포하였다. 특히 4월 3일에 발표된 긴급조치 4호는 이른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全國民主靑年學生總聯盟)'이라는 반정부단체가 공산주의적 인민혁명을 통한 국가전복을 기도하였다는 이유로, 관련된 학생·지식인들의 대량 투옥 사태를 가져온 일이 있었다.
이 날 아침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의대 학생들과 법대·문리대 학생들이 동숭동(東崇洞) 캠퍼스에서 한바탕 데모를 하기로 약속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긴급조치가 발표된 것이다. 사전에 이것을 안 문리대생과 법대생은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 유독 우직한 의대생만이 나타난 것이다. 약 30명이 동대문(東大門)경찰서에 연행되었다. 이러한 경우에 나는 뻔질나게 경찰서를 방문하곤 하였다. 부탁하고 또 부탁해서 저녁때에는 신병을 인수하도록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한 학생에 대하여 신병인수원을 세 장씩 써야 했다. 그것도 친필로 써야했다. 손끝이 아파지고 시간이 흘렀다. 겨우 작업을 끝내고 보니 자정이 지났다.
당시에는 통행금지시간제도(通行禁止時間制度)가 있었다. 자정이 지나면 통행이 금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빨리 경찰서를 떠나고 싶은 마음은 나나 학생들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몇 차례 진정을 한 끝에 겨우 허락을 받았다. 경찰서로부터 대학까지는 멀지 않다. 고요한 거리에는 인기척이 없다. 경찰서를 떠나서 원남동(苑南洞) 로터리로 가는 중이다. 누군가가 주동이 되어 노래가 시작되었다. 모든 학생의 합창이다. 나는 당혹했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돌아간다고 경찰서와 약속했기 때문이다.
무사히 병원 앞마당을 거쳐 의대본관에 도착했다. 학생들을 몇 군으로 나누어 몇 개 사무실에 분산·투숙토록 하였다. 노래가 계속된다. 나는 방마다 돌면서 무엇이 그렇게 흥겨우냐고 물었다. 어느 학생이 말한다. "학장님, 몹시 화나신 모양인데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얼마나 값진 경험을 했습니까. 학장님 덕분으로 잘 풀려나와 감사합니다마는 학장님은 저희들 덕분에 좋은 경험 하시는 것 아닙니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물끄러미 듣고만 있었다.
서울대학교 종합화계획에 따라 관악캠퍼스가 건립되고, 1975년 1학기 개강에 대비하기 위하여 대학본부(大學本部)·문리대(文理大)·법대(法大) 등 20개 기관이 관악(冠岳)으로 이전하였다. 동숭동 캠퍼스가 없어지고 연건동 캠퍼스만이 남은 셈이다. 의과대학은 더욱 독자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고 이런 면에서는 학생문제도 예외(例外)가 아니었다.
학원동요(學園動搖)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동숭동 캠퍼스가 이전됨에 따라 이 캠퍼스를 의대에서 흡수했으면 하는 꿈에 부풀었다. 이미 의대 캠퍼스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앞으로는 더욱 심각성을 더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한편으로는 관악 캠퍼스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이며 동숭동 캠퍼스를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는 것이 나의 견해였다. 나는 이 문제를 교수회의에 상정하여 건의문을 작성하고 상부기관과 접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완패였다. 나의 의견은 전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도 아쉬운 감이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