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재임 중 나는 교원대(敎員大)의 특성을 구현하기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자평(自評)하고 싶다. 대표적인 특성은 교원대(敎員大)가 유아교육, 초등교육, 중등교육을 담당할 교원을 양성할 목적으로 통합 교육(統合 敎育)을 실시하는 종합교육기관이라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교원교육(敎員敎育)에 있어서 전제가 되는 것은 교과교육(敎科敎育)이다. 이 교과교육(敎科敎育)을 결실(結實)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方法)과 실천(實踐)이 모색되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연수업무(硏修業務)도 주요한 특성(特性)인 것이며 이에 관하여는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다.
한편으로는 경제교육(經濟敎育), 인구교육(人口敎育), 보건교육(保健敎育)에 대하여 각별한 배려를 하였다. ‘경제’나 ‘인구문제’가 중요하다는 점은 언제나 지적되며 누구나 ‘건강(健康)’에 대하여는 입을 모아 실현을 촉구하지만 막상 이들을 교육할 교원을 양성하는 데는 거의 성의를 보이지 않았었다. 나는 이 분야를 담당할 교수진을 영입하고 교육과정에도 반영시켰다. 특히 보건학(保健學)은 내 자신의 전공인지라 더욱 큰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보건학을 담당할 교수를 물색하던 끝에 전북대(全北大)의대 예방의학교실에서 근무 중에 있던 박영수(朴榮洙) 교수를 영입하기로 하였다. 박(朴)교수는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나와 인연을 맺게 된 제자인데 정력적인 노력가인데다가 의욕적이고 추진력이 강한 학자이다. 생각했던 대로 그는 학교보건(學校保健)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올렸으며 개인적으로도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현장교육의 장(場)으로서 박물관을 설치한다는 것도 나의 계획의 하나였다. 이를 위하여 단국대(檀國大)에서 일하던 정영호(鄭永鎬) 교수를 영입하였다. 정(鄭)교수 역시 생각했던 대로 사학자(史學者)로서의 관록과 실력을 발휘하여 짧은 시간 내에 가시적(可視的)인 성과를 얻는 데 성공하였다. 한편 나는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컸고 가능한 많은 시간을 학생들과 보냈다. 1 · 2학년생이 기숙사에 의무 수용되었고 3학년생도 대부분 이 기숙사 생활을 하였던 까닭에, 학생들에게 방향 제시를 올바르게 해준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였다. 기회 있을 때마다 나는 선배와 전통이 없는 입장이니 학생들의 책임은 참으로 중차대(重且大)하다고 역설하였다.
교원대의 특성을 바탕으로 하는 학생활동을 전개한다는 목적으로 ‘청람축전’이라는 학생행사를 마련토록 하였고 ‘청람문화’라는 교지(校誌)를 발행토록 하기도 하였다. 모든 것을 학생 스스로가 해결하는 자율(自律)정신을 심어주는 데도 노력하였다. 여기에는 학생처장으로서 활약했던 이병진(李丙辰)교수의 기여가 컸다. 이(李)교수는 문교부 공무원으로서 실무행정 경험이 풍부한 교육학자이다.
이렇게 해서 보람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88년 새해를 맞이하여 얼마 안 되어 전(全)대통령께서 만나자고 하는 전갈이 왔다. 약속된 시간에 나는 청와대(靑瓦臺)를 방문하였다. 대통령께서는 임기가 머지않아 끝나게 되었는데 靑瓦臺)에서 일하고 있는 비서관 특히 교무(敎務)수석이 걱정이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신극범(愼克範) 수석비서관을 나의 후임으로 임명하는 데 동의하였다. 정년(停年)까지 6개월이 남기는 하였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미련도 없었다. 대통령께서는 오찬을 함께하자고 하신다.
오찬을 들면서 그 해 1월 23일부터 2월 5일까지 미국을 방문하게 되어 있어서 이 계획을 말씀 올렸더니 잘 다녀오라고 격려해 주셨다. 미국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는 도지사를 비롯한 충북(忠北)관내 기관장들에게 신(愼)총장을 잘 도와줄 것을 당부하였다. 2월 15일 다음과 같은 이임사(離任辭)를 남기고 교원대(敎員大)를 떠났다. 지금도 눈물을 글썽거리며 목 메인 쇠로 송사(送辭)를 읽던 학생대표의 모습이 생각난다. 신(愼)박사는 총장에 취임한 후 교원대(敎員大)를 발전시키는 데 영일 없는 노력을 하여 명실 공히 우리나라 교원양성(敎員養成)의 본산(本山)으로 만들었고 총장직을 연임하여 더욱 건투(健鬪)를 계속하고 있다.
이임사(離任辭)
존경해 마지않는 서명원(徐明源) 문교부장관님을 비롯한 내빈 여러분과 교직원 여러분 그리고 친지 여러분을 모신 자리에서 이임(離任)의 인사를 올리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지난 85년 3월 5일에 한국교원대학교(韓國敎員大學校) 총장으로 부임하여 다음날 제1회 신입생 입학식(入學式)을 거행했던 일이 엊그제 같이 느껴지는데 벌써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스승을 보기 힘들다’는 현실에서 참스승을 길러내고 국가의 과업인 동시에 세계적인 추세인 교육개혁(敎育改革) 과제(課題) 해결의 일환으로 한국교원대학교가 탄생했던 것입니다. 막상 출범하고 보니 여러 가지 난제가 가로막고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에 한국교원대학교는 예상외의 빠른 속도로 발전하여 명실 공히 교육의 본산(本山)으로서의 기틀을 마련하고 교육을 위한 종합대학교(綜合大學校)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어, 그 존재를 과시하게 되었으며 이제 빛나는 앞날을 보증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3년은 본인의 생애를 통해서 가장 보람있는 기간이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발전이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여기에는 여러 분야 인사들의 노력과 지원과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본교가 시작될 때부터 헌신적인 노력을 계속 해 오신 박한식(朴漢植) 교수부장님을 비롯한 교수님 여러분에게 먼저 감사를 올리겠습니다. 여건이 구비되지 못한 환경 속에서도 교수님 여러분은 불평 없이 소임을 다해 주셨습니다. 한국교원대학교가 학문탐구와 더불어 교육전문성(敎育專門性) 교육(敎育)을 담당한다는 특수성이 논리상으로는 쉽게 해석될 수 있지만 이를 구현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교수님들이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아끼시지 않은 데 대하여 충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다음으로는 원영상(元永常) 사무국장을 비롯한 행정직원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언제나 음지(陰地)에서 남모르는 수고를 하시는 여러분의 처지를 본인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처음부터 본교 건축 업무를 담당한 건축사무소의 책임자였고 현재는 서울대학교 시설관리국장(施設管理局長)으로 활약하고 계신 윤길상(尹吉相) 기감(技監)님의 노고를 치하합니다.
한편, 학생 여러분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습니다. 선배와 전통이 없고 여건마저 어려운 속에서도 여러분은 참다운 대학생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했고 참다운 스승이 되는 길을 그야말로 자율적(自律的)으로 걸어 왔습니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단 한 시간의 수업 결손도 없이 대학생활을 멋있게 그리고 가치 있게 누려온 여러분이야말로 우리나라 대학생의 귀감이라고 높이 평가하는 바입니다.
한편 대학의 발전이 학내인사나 학생만으로 이룩될 수는 없는 일이며 많은 학외(學外)인사의 도움이 절대적 요인으로 된다는 것은 이론 이전의 상식입니다.
먼저 노건일(盧建一) 충북도지사님을 비롯한 각 기관장님들의 도움과 협조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올립니다. 여러분의 아낌없는 지원이 절대적인 힘이 되었다는 데 대해서는 사족을 붙일 필요가 없는 줄로 압니다.
동시에 한국교원대학교를 자신들의 학교와 같이 아껴주시고 밀어주신 조성진(趙成鎭) 충북대학교 총장님, 이종익(李鍾益) 청주대학교 총장님을 비롯한 여러 총학장님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최대의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본교 기성회를 이끌어주신 연규횡(延圭鐄) 회장님과 유성종(劉成鐘) 교육감님에게 재삼 감사의 뜻을 올립니다.
다음으로는 서명원(徐明源) 문교부장관님을 비롯한 정부의 여러분에게 심심한 감사와 존경의 뜻을 올립니다. 정부의 뒷받침이 없이는 아무런 발전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국회(國會)와 교육위원회(敎育委員會)의 여러분에게도 새삼 감사의 뜻을 올립니다. 그동안 저희들에게 주신 지도와 지원이 본교 발전의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지적할 필요는 없을 줄로 압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평소 본교를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신 이창갑(李昌甲) 충남대학교 총장님, 이원설(李元卨) 한남(韓南)대학교 총장님, 이정오(李正五) 과학기술대(科學技術大) 학장님, 김종운(金鐘云) 서울대 부총장님, 이광호(李洸鎬) 서울의대 학장, 한용철(韓鏞徹) 서울대학교 병원장님, 외우(畏友) 박찬무(朴贊武) 박사, 김정진(金楨鎭) 박사 등 많은 친지들이 바쁘신 일정에도 불구하고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고 계십니다. 왕림해주신 여러분의 따뜻한 우정과 정성에 대하여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임(離任)하는 자리이고 보니 옛일이 회상되기도 합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꿈을 갖게 마련입니다. 소년 시절에 본인의 꿈은 군수(郡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농촌 출신의 본인으로서는 군수(郡守)가 몹시 부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집안 어른들의 권유로 방향이 바뀌어 의학을 공부하게 되어 이 꿈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의학을 공부하였습니다마는 임상의학과는 거리가 먼 예방의학(豫防醫學)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꿈은 훌륭한 교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훌륭한 교수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고 꾸준한 연구와 교수방법의 개발이 전제조건으로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관리직(管理職)을 맡게 되고 보니 훌륭한 교수가 되겠다는 꿈도 헛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낙제생(落第生)이 된 것입니다. 낙제생으로서의 생활이 연속되다가 3년 전에 한국교원대학교 총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번만은 우등생은 되지 못할망정 급제생(及第生)은 되어야겠다고 단단히 자신에게 다짐하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 판정은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본인은 한국교원대학교 총장으로 재임하는 동안에 많은 것을 배웠고 또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교육의 중요성에 관하여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마는 바람직한 교육자상(敎育者像)의 정립이 더욱 시급하다는 사실도 절감하였습니다.
참스승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교수들 자신들이 참스승이라야 한다는 평범한 이론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교육에 대하여 새로운 차원에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교육개혁(敎育改革)운동에서 그 양상을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정에서 한국교원대학교가 안고 있는 과제는 한없이 많게 됩니다. 일반적 학문탐구와 더불어 교육전문성(敎育專門性) 교육을 수행해야 하는 대학인 까닭에 더욱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되는 것입니다.
본인은 평소에 건강(健康)한 사회를 강조해 왔습니다. 건강한 학원과 건강한 사회의 근간은 건강한 교육입니다. 건강한 교육은 건강한 교육자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말하는 참스승이란 바로 건강한 교육자를 뜻한다는 것이 본인의 견해입니다.
학문(學問)과 진리(眞理)는 영원한 것입니다. 이들은 인류의 공동 재산(共同 財産)인 것입니다. 이러한 학문과 진리를 바탕으로 하는 까닭에 학원도 영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원이 건강치 못할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원리를 잠시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이 본인에게는 생애에서 가장 영광된 날이기도 합니다. 별로 공헌한 것이 없는 본인에게 국민훈장무궁화장(國民勳章無窮花章 )이 전수되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또한 한국교원대학교가 발족한 후 최초로 석사학위 수여식(碩士學位 授與式)이 거행된 것도 오늘입니다. 그리고 평소에 정성껏 이끌어주신 서명원(徐明源) 문교부장관님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후임 총장인 신극범(愼克範) 박사에게도 아낌없는 성원과 격려를 주시기를 간곡하게 당부 올립니다. 신(愼)총장께서는 교육학자로서 또한 행정가로서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있는 분이며, 한국교원대학교의 내실을 기하고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는 데 가장 알맞은 분이라고 믿습니다. 신(愼)총장께서는 내일 부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신(愼)총장을 중심으로 한국교원대학교가 찬란하게 빛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분에게 재삼 재사 경의와 사의를 올리면서 이임(離任)의 인사를 맺겠습니다.
1988년 2월 1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