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학원소요는 계속되었고 학원 프락치 감금폭행사건, 민한당사(民韓黨舍) 농성사건, 경찰차 방화사건 등이 발생했으며, 이에 대응하여 강경대처가 취해지기에 이르렀다. 10월 국회에서는 학원자율화 포기(學園自律化 抛棄)가 아니냐고 추궁을 받기도 했다. 나는 폭력이 학원자율화에 대한 적이라고 강조하고 이에 관한 소신을 밝히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드디어 10월 25일 새벽에 시험거부 선동자를 차단하기 위해 서울대에 6,420명의 경찰이 투입되었다. ‘12‧21자율화 조치’로 학원에서 경찰이 철수한 지 7개월 24일 만의 일이었다. 자율 처리의 한계를 넘었다는 서울대의 판단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조처가 이(李)총장의 독단적 판단에서 취해 질 수는 없는 일이다.
이 타율요법(他律療法)이 충격(衝擊)과 자탄(自歎)을 가져온 것은 당연하다. 나와 이현재(李賢宰) 서울대 총장은, 경찰투입이 자율화의 후퇴는 아니라고 했지만 심경은 걷잡을 수 없이 착잡했다. 투입된 38시간 만인 25일 밤에 경찰은 철수했다. 나는 서울대 사태가 대학인 모두의 아픔이라고 성명했고 교수들이 질서회복에 앞장서 줄 것을 간곡하게 당부하였다.
10월 30일, 민한당(民韓黨)과 국민당(國民黨) 및 의정동우회(議政同友會)는 소속의원 122명의 이름으로 나에 대한 해임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해임안은 그 이유에서 “문교부장관은 설득력 있는 정책대안을 마련할 의지나 노력 없이 강경일변도로 경직된 방안만을 취하다가 급기야 대량의 경찰력을 학원에 투입시켜 학생을 적대시하는 슬픈 역사를 만들고 말았다”고 말하고 “작금의 학원사태를 진정시키고 대학자율화를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문교부장관은 마땅히 해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는 11월 2일, 본회의에서 무기명 비밀투표로 나에 대한 해임안을 표결에 붙였는데 재석 244명 중 가(可) 94표, 부(否) 1백 45표, 무효 3표, 기권 2표로 부결되었다. 반대표는 여당인 민정당(民正黨)의 재석 의원 1백 44명보다 한 표가 많았고 찬성표는 민한(民韓) ‧ 국민(國民) ‧ 의동(議同) 공동발의 의원 수 1백 22명에서 투표에 불참한 24명(민한(民韓) 12명, 국민(國民) 8명, 의동(議同) 4명)을 뺀 98명보다도 4표나 적었다. 야측의 패배는 화젯거리에 오르기도 하였다.
이날은 11년 만에 부활된 ‘학생의 날( 제 21회)이기도 하여 나는 아침 일찍 국립묘지(國立墓地) 학도의용군(學徒義勇軍) 모역을 참배한 뒤 수유리 4‧19 묘지를 참배하고 헌화‧분향했다. 한편으로는 ’선배 학생들의 빛나는 호국정신을 계승하고 현재의 위치를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자‘는 담화문을 발표하고 학생들에게 당부하였다.
일부 대학의 학원소요는 날이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었으며 나는 이것을 자율파괴 행위라고 단정했다. 11월 8일, 국회문공위(國會文公委)에 출석해서 그동안 검토해 오던 학원문제의 새 대책을 보고했다. 이웃 시민의 생계가 위협받아 사회가 불안해지는 학원사태는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지적하고 대학 기능이 학원사태로 마비되는 경우에는 문교부장관도 경찰투입을 요청하겠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이 같은 정책변화의 배경에 대하여 많은 의원들이 질문을 주었다. 나는 스승에 대한 폭행, 총장실 난입, 외부인사 린치사건 등을 불길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중에 11월 3일을 전후해서 연세대에서 벌어진 상황을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학원의 실태, 시민들의 고통 등을 통해 심경변화가 생겼으며 정책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고 답변하였다. 실제로 연세대(延世大) 현장에서 목격한 처참한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또한 자율화정책에는 변함이 없고 이를 밀고 나가기 위해 이번 조치는 일시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나는 대학을 방문할 때마다 갑자년(甲子年), 즉 84년을 대학자율화의 ‘시험기(試驗期)’로 삼는다면 다음 해는 ‘정비기(整備期)’가 될 것이니 하루 빨리 자율화의 뿌리가 굳건히 내리도록 하자고 강조했고 대학마다 겪었던 자율화의 진통은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소신을 피력하였다.
해직교수(解職敎授)에 대한 대책은 제적학생의 경우보다 앞서 논의되었다. 이 문제는 전임 장관이 재임 말기에 이미 고려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80년 계엄기간 중에 강단을 떠난 해직교수는 전국 25개 대학에서 86명이었다.
나는 83년 12월 5일 국회문공위(國會文公委)에 출석하여 해직교수의 복직이 84학년도 신학기부터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고했다. 다만 해직교수가 원 소속대학으로는 복직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달았다.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해서 결론을 내린 것인데 일부 해직 교수들은 복직을 허용하면서 원 소속대학 복귀를 금지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하고 원로교수들이 타 대학의 교수공채(敎授公採)에 응모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학원자율화 조치 이후의 한 학기를 지켜보면서 해직교수가 원 소속대학으로 돌아가더라도 학원소요의 요인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학원의 진정한 안정과 자율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해직교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관련 인사들과 여러 차례 협의를 거쳤고 대학교육협의회(大學敎育協議會)의 건의도 있고 해서 원 소속대학에 복귀할 수 있도록 방침을 새워 84년 6월 14일, 국회문공위 보고를 통해 발표했다. 그때 까지는 86명 중 타 대학 복직 22명, 시간강사 6명, 연구직 6명 등 34명이 취업했던 것으로 집계되었었다.
이 같은 방침은 그동안 정부가 취해온 화합조치의 하나이며 제적학생 복교, 구속학생석방, 학원자율화조치, 일부 해직언론인의 복직 등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