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장 생활은 반년도 미치지 못하였다. 명(明)선생께서 9월에 나세진(羅世振) 선배에게 학장직(學長職)을 물려주셨고 나는 학생과장직에서 물러났다. 평교수(平敎授)생활로 되돌아가신 선생의 활약은 여전히 계속되었고 나와의 관계도 변치 않았다.
64년에 서울시 의사회장(醫師會長)으로 선출되셨다. 제일 먼저 봉착한 일이 ‘세브란스’병원의 파업이었는데 선생께서는 재치 있는 방법으로 이 일을 해결하신 것으로 유명하다. 기관지인 의사신문의 운영난도 문제였다. 이 문제 역시 슬기롭게 넘겼다. 서울시 의사회의 과제는 수없이 많았다. 회규를 제정하기도 하였고 응급환자 처리규정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그런가하면 채혈(採血)문제에 대하여 대책을 수립하기도 하였고 전문과목 표시문제 등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노력을 전개하셨다.
65년 말에는 국회 보사위원회에서 비의사(非醫師)의 의료행위(醫療行爲)를 합법화하는 유사의료법(類似醫療法)과 비의사(非醫師)를 소장으로 할 수 있게 한 보건소법(保健所法) 개정안이 통과되었는데 서울시 의사회는 ‘현행의료법을 모독하고 의권(醫權)을 유린할 뿐 아니라 국민보건을 저해하는 악법’이라고 규정하고 악법투쟁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 투쟁은 해가 바뀐 66년 초에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되어 2월 3일 열린 당무위원회에서는 보사위원회에서 통과시킨 법률안을 폐지키로 하고 본회의에 상정시키지 않았다.
1966년 4월 4일에 열린 제 20차 서울시 의사회 대의원총회에서 회장으로 재선되신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뒤를 이어 4월 16일, 17일 대한의학협회 제 18차 대의원총회가 전남 광주(光州)에서 개최되었는데 뜻밖에도 선생께서 회장으로 선출되셨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심경을 토로하신 첫인사는 많은 분들이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모자라는 것을 노력(努力)으로써 봉사(奉仕)임하고 부족한 것은 열성(熱誠)과 연구(硏究)로써 해나가면서 우리 의사들이 국민을 위하여 봉사(奉仕)할 수 있고 국가 사회를 위하여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모색하는 동시에 내적으로는 회원들의 복지를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느냐 하는 점을 아울러 생각하고자 합니다”
환갑이 되던 해에 회장으로 선출된 선생께서는 이사장 중심제로 되어있던 체제를 회장 중심제로 바꾸었다. 그때까지는 선생과 대학동기이고 강원도(江原道), 전라남도(全羅南道)지사 등을 역임하신 군 장성 출신 박건원(朴乾源) 박사께서 이사장직에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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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년 퇴직하고 명주완 선생이 경향신문에 쓴 회고기 (경향신문 1974. 2.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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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년 4월부터 70년 4월까지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이룩하신 업적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의 하나가 67년 3월 21일에 창간된 의협신보(醫協新報)이다. 의학협회를 대변할 기관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서울시 의사회의 의사신문(醫師新聞)과 절충한지 2년 만에 결국 각각 독립적인 기관지를 발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의사의 신분보장문제, 세금문제, 의대증설문제를 비롯하여 의료보험문제, 의약분업문제 등이 광범위하게 다루어지기도 하였다. 선생께서는 명석한 판단력(判斷力)과 과감한 추진력(推進力)으로 모든 일에 대처해 나가셨다.
아세아 대양주 의학협회 연맹(Confederation of Medical Association in Asia and Oceania, CMAAO)이라는 단체가 있었는데 우리나라가 CMAAO의 정식회원으로 된 것은 1956년 4월 19일에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되었던 제3차 총회 때이다. 당시 의협회장은 심호섭(沈浩燮) 박사였고 이사장은 손금성(孫金聲) 박사였다.
제6차 회의가 69년 11월 10일부터 12일까지 대만 대북에서 열렸는데 명 회장이 박건원(朴乾源), 김성환(金星煥) 박사와 함께 참석하셨으며 나도 ‘인구와 의사분포’라는 논문발표와 더불어 명(明)선생 보좌의 목적으로 동행하였다. 원래 이 기구는 제3차 총회까지를 필리핀에서 개최되었는데 “Asian Confederation of Medical Association"이라는 명칭이 CMAAO로 바뀐 것은 제3차 총회 때였다. 그 후 1965년 호주에서 제4차, 1967년 일본 동경(東京)에서 제5차 회의가 열렸다.
제6차 대만총회에서는 다음 총회를 71년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고 제7차 총회 회장에 명(明)선생, 부회장에 김성환(金星煥) 선생, 이사에 박건원(朴乾源) 선생을 선출하였다.
대만총회는 국제회의로서는 준비가 부족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만 회장이던 두총명(杜聰明) 박사의 노력에는 감격했다. 총회 전날 타이페이(台北)비행장에 내리니 작은 체구의 인사가 CMAAO기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분이 두(杜)회장이었다. 대만에서는 대단히 이름이 있는 의학자(醫學者)였는데 어찌된 셈인지 도와주는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직접 쓴 족자를 70매 마련하여 외국인 참가자에게 나누어주는 성의(誠意)를 보이기도 하였다. 내용이 각각 다르며 나는 받은 족자를 아파트로 옮겨오기 전까지 성북동(城北洞)집 벽에 걸어놓고 당시의 일을 회상(回想)하기도 하였다.
1970년 4월 29일 의협대의원총회가 강원도(江原道) 춘천(春川)에서 열렸는데 이 총회에서 명(明)선생 후임으로 한격부(韓格富) 선배가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이리하여 CMAAO 준비위원장직을 한(韓)회장이 맡게 되었다. 우리 의학계에서 처음 맞이하는 국제회의를 어떻게 해서든 성공시키려는 집념으로 두 분은 전력투구를 하였다. 나도 직접ㆍ간접적으로 일을 돕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명(明)선생의 두뇌회전은 따를 사람이 없었으며 나는 그 뒤를 쫓느라 어지간히 노력하기도 하였다. 틈을 보이지 않는 선생의 성격을 만족시키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1971년 10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열린 CMAAO 서울대회는 역대 어느 총회보다도 훌륭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외국 학자들은 입을 모아서 극찬(極讚)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나라 의학사상 새로운 역사의 한 장(章)을 마련한 것이다. 여기에는 명주완(明柱完) 회장의 치밀한 계획(計劃)과 강철 같은 의지(意志)가 절대적이었다. 선생의 추진력과 친화력(親和力)은 참으로 대단한 바가 있다. 내 자신도 선생을 보필하고 외국학자(外國學者)를 안내하는데 혼신(渾身)의 노력을 하였다.
조선호텔에 마련된 회장(會場)은 시종 초만원사태를 이루었으며 장기이식의 권위자인 미국 콜로라도 대학의 스타즐(Thomas E. Starzl) 교수, 63년 노벨상 수상자인 서독의 리넨(Foedor Lynen) 박사, 한국인으로서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뉴욕대학의 이광수(李 光秀) 교수의 특강은 더욱 이 대회를 빛나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