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힘까지 삶의 현장에서 다 소진할 때까지…
송병순 선생은 선릉에 있는 7, 8평 남짓의 작은 오피스텔에 ‘금융연구소’ 간판을 달아 놓고 매일 출근하고 있었다. 금융연구소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지만 기실 사무실은 노년의 소일공간에 가까웠던 것 같다.
2009년 말 내가 선생 사무실을 찾았을 때 선생은 수십 년 동안 보좌를 해온 최 부장의 부축을 받아야만 거동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불편했다. 공직을 마감한 직후 산에 올랐다 벼랑에서 실족하는 사고를 당해 그 후유증이 남아 있는데다 고령인 탓도 있었다. 원래 말이 느린데다 사고 탓인지 다소 어눌했지만 선생은 나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지난 시절을 이야기하고 기록하는 일에 열성적이었다. 그만큼 자신의 삶에 대한 강한 프라이드가 느껴졌다.
사고 이후 눈물겨운 재활 의지로 지리산을 두 번이나 등반한 것을 자랑으로 여길 만큼 선생은 건강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여행 차 일본에 다니러 가서 ‘니시건강법’을 배워와 꾸준히 실천하고 있었던 것도 그런 열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끔 선생은 그런 건강관리로 누구보다 허벅지의 근육이 단단하다며 나보고 만져보라고도 하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만큼 끝까지 삶의 열정을 불태우고 싶은 의지의 일단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가끔 선생이 몸이 좋지 않아 인터뷰를 하기로 정한 날짜를 몇 번씩 거르기도 했다. 실제 넘어져서 병원 신세를 지는 등 아무래도 노년의 삶이라는 게 자질구레한 병이 찾아오기 마련이어서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고, 나는 굳이 서두르지 않았다. 사실 선생이 70세 되던 해에 회고록이 발간되었고, 그 내용을 보강해서 연재하기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작업이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쓰러질지언정, 결코 쉬지 않았던 삶
마침내 6개월 여 작업 끝에 완결을 지은 초반부부터 연재를 시작하고 후반부 집필 작업을 병행했다. 그러던 중 선생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조찬모임에 나갔다가 쓰러진 것이다. 나는 회사 간부들과 상의를 해, 일단 연재를 중단시켰다. 병석에 누워 계신 상태에서 한 회, 한 회 선생의 검증 없이 연재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도리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선생은 꽤 장기간 의식불명인 상태로 누워 계셨다. 선생을 보좌하는 최 부장과 연락을 하며 병세를 설명 듣고 몇 번이나 문병 갈 뜻을 비쳤지만, 의식불명으로 중환자실에 누워 계신 상태에서 기회를 얻기 어려웠다. 결국 선생은 그렇게 누워 계시다가 2012년 결국 운명하셨다.
정말 불꽃같은 인생이었다. 쓰러질지언정, 결코 쉬지 않았던 선생…. 마지막 남은 한 줌의 힘까지 모두 삶의 열정으로 불태우고 떠나신 것이다. 현역에 있을 때도 선생은 최선을 다 했고, 늘 남보다 앞서 업무에 선진적인 기법을 도입하려고 애 썼던 선구자적인 공직자였다. KB국민은행이 오늘날 국내 최고의 은행으로 자리 잡은 것도 80년대 초 선생이 다진 기반에 있음을 나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선생의 그런 성실함과 열정이 있었기에 두 번이나 부도난 회사의 법정관리인을 맡아 소생을 시키는 결과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인품의 소유자
선생의 공직생활은 비교적 화려했고, 탄탄대로라고 평가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금융권 공직자로서는 소위 할 것은 다해봤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해양대를 나와 관세청 공무원으로 시작했지만,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직을 시작으로 국민은행장, 은행감독원장, 보험공사 사장, 그리고 민간은행인 광주은행장까지, 금융전문가로 자리매김되며 누릴 자리는 다 누리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이하게도 선생은 공직 퇴임 이후,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캐피탈 회사와 PC조립회사를 창업해서 경영하기도 했는데,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평생 공직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 사업가로서 능력을 펼치기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선생의 공직과 삶에 대해서는 본문을 읽으면 알 수 있을 것이고, 1년 6개월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친지들의 증언과 내가 옆에서 본 선생의 풍모는 강직하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분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남을 잘 믿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기만과 사기도 많이 경험한 삶을 살았다. 사업에서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도 믿었던 사람의 배신이 한몫했기 때문이었다. 배신 당한 얘기를 하면서 선생은 감정이 담기지 않은, 마치 남 얘기하는 듯한 말투로 허허롭게 웃었는데, 지금도 그 모습이 선연하다.
이제는 선생과, 최 부장과 함께 시켜먹던 점심도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오전에 만나 취재, 인터뷰가 끝나면 점심 시간이 되는데, 오피스텔 지하 식당에서 시켜 선생과 먹던 백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기껏 5, 6천원 하던 백반이었는데, 계란프라이가 오래전 집에서 엄마가 해주던 맛 이어서 참 맛있게 먹었다.
선생은 불꽃처럼 살았다. 마지막 힘까지 다 삶에 소진하고 떠나셨다. 공직자로서도 훌륭했다는 평가가 반시 뒤따를 것이다.
편집장 김청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