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석은 배재중학(培材中學)과 용산고교(龍山高校)를 다니면서도 줄곧 1, 2등을 다투었다. 그래서 나는 아들이 당연히 서울대에 입학하리라고 자신했었다. 그러나 민석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2차 대학에 합격했으나 다시 도전하겠다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끝내 민석은 서울대 입학에 실패하고 외대(外大) 영어과에 들어갔다. 나는 그가 당한 젊은 날의 좌절이 오히려 그에게 약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젊은 시절에 당한 좌절은 ‘삶이냐, 죽음이냐’ 하는 생존의 문제였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내 아들 대(代)에 접해 있는 좌절은 얼마든지 차선의 방법이 있었고, 민석은 그것을 택했을 뿐이다.
민석은 외대를 졸업하고 계속 공부하여 1993년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관동대학(關東大學) 영문과 정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2006년부터는 <산학협동단장>을 맡을 정도로 학교 일에도 왕성하게 참여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특히 영문학도로서 민석은 언제 ‘컴퓨터전산’에 대해서 공부를 했는지 몰라도 관동대학교의 전산시스템을 모두 전담할 정도인 모양이다. 지금도 아내가 컴퓨터를 쓰다가 장애가 발생하면, 시외 전화통을 붙들고 민석이와 30여분동안 통화를 해서 복구하는 것을 나는 재밌게 지켜본다. 가끔 강원도 촌놈이 되어버린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관동대학의 ‘지키미’ 교수로 열심히 학문의 길을 걷는 것을 보면 여간 대견스럽지 않다.
민석은 주익(周益)과 주원(周原), 두 아들을 두었다. 주익이는 서울 산업대 건축과에서 공부하고 있고 둘째, 주원(周原)이는 강능고에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이다.
며느리는 여수수산대학(麗水水産大學) 식품공학과 김우준(金又俊) 교수의 2남 2녀 중 장녀였는데, 나는 그 아이를 1988년에 처음 보았다. 보험공사 사장을 마치고 광주은행장으로 가기 전이었는데, 대만의 유태영 박사로부터 ‘한국의 기술도입 경과에 대하여’라는 조사용역 의뢰를 받고 자료 검색 차 일본에 몇 개월 머무른 적이 있었다. 그때 귀국하는 나를 민석이가 지금의 며느리를 동행하고 배웅 나왔었다.
솔직히 나는 좀 당황했다. ‘항상 어린아이로만 생각했는데 벌써 가정을 가질 때가 되었구나’ 하는 대견한 생각과 함께, ‘사전에 무슨 언질이라도 주어서 내가 마음 준비할 수 있도록 할 것이지’ 하는 서운함도 있었다. 그렇게 공항에서는 특별한 느낌이나 생각 없이 그 아이를 보고 헤어졌다. 그러나 이미 민석의 결심은 서 있었다. 외아들이자 장남의 위치에서 결혼 상대자를 택했다는 그는 결혼관과 여성관이 확고했기 때문에 아비로서의 조언은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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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 / 우리 부부 왼쪽은 딸 민정, 오른쪽은 며느리 김현주, 뒷줄 오른쪽은 아들 민석, 왼족은 사위 박원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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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2월에 여수의 사돈댁에서 약혼식을 가졌다. 그때 아내는 물론 민정이와 그의 시부모님, 조 여사님(權泰元 씨 부인), 나의 형제자매들, 이태영(李泰英) 교수, 이낭원(李浪遠) 씨 등 약 20여 명이 내려갔다. 그때 이용했던 비행기가 80석이었으니, 꼭 우리 가족들이 전세 내어 탄 기분이었다. 그 당시 멀다 하지 않고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약혼식장에서 보았던 며느리는 성격이 구김살이 없었고, 영민하게 일에 대처하고 있었다. 나는 ‘됐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 양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두 젊은이의 앞길을 축하해 주었다.
사돈 되시는 김우준 공학박사는 부산수산대학과 동(同) 대학원을 마치고 공학박사 학위를 받으신 분으로, 여수수산대학 식품공학과 교수를 거쳐 대학원장까지 역임하신 분이다. 현재는 정년퇴임을 하였지만, 1994년에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그동안 자신의 연구논문을 모은 연구보(硏究報) 문집을 발간하여 후학들에게 큰 도움을 남기셨다.
그분은 성격이 타고난 학자였다. 항상 조용하시고 매사에 정중하신 몸가짐을 가지신 분이시다.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광주은행장 시절에 여수에 행사가 있어 내려가면 어떻게 아셨는지 꼭 나를 찾아 주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민석이는 두 달 후에 천주교 혜화동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아내가 화상 사고 이후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아내는 신부님에게서 영세를 받았었다. 이런 연유로 민석의 결혼은 천주교 혜화동 성당에서 치렀는데, 청첩장을 돌리지 않고 주위의 몇몇 친척이나 지인들에게만 인사차 알렸다. 그런데 결혼식 당일 혜화동 천주교회 앞은 교통정리를 해야 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나로서는 무척 놀랄 일이었다.
알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된 연유인가 하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각 신문의 소식란과 관우지(관세청 사보)에까지 결혼 소식이 났고, 그것을 알고 사람들이 몰려온 것이었다. 내가 오랫동안 몸담았지만 세관의 관세분야와 전매청 신용보증기금을 비롯한 국민은행 간부들이 참석했는데,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