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63년, 시마즈제작소에서 구입한 감정장비(Panacred)의 사용법을 습득하기 위해 3개월간 일본에 체류한 적이 있었다. 참고로 Panacred는 적외선 표광 광도계와 개스 크로마토그라피를 결합시킨 최신 장비로서 유기화학물을 분석하는데 아주 유효한 장비이다. 먼저 유기화합물을 개스 크로마토그라피를 걸러서 미량의 검체를 서서히 가열하면 개스크로마토그라피에 몇 개의 유분으로 분리가 된다. 그 분리된 각 성분을 적외선 풍광광도계에 걸러서 그 물질의 성분으로 무엇인가를 특정 짓는다.
이런 특수분석기기이므로 상당히 고도의 훈련을 거치지 아니하면 매우 알기 힘든 장비였다.
그때 내가 하숙을 했던 곳이 바로 박한홍 씨 집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그들 부부의 융숭한 대접을 받아 국내에 와서도 서로 연락을 하면서 지냈는데, 그가 박기억 님과 그런 사이일 줄이야! 참으로 세상은 넓고도 좁다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만난 우리 세 가족은 자주 어울렸다. 부부 동반으로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했는데, 부모가 그렇게 어울리니 아이들끼리도 형제자매같이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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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전자 창업자이자 나의 지인이자 사돈인 박기억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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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이가 중2 땐가, 동경의 박한홍 씨가 모국을 방문해 우리들은 함께 설악산(雪嶽山)에 가기로 했다. 당연히 이때 박기억 님의 가족도 함께 가게 되었다. 그때 사위 박원덕은 중3이었는데, 민정이와 사위는 그때 서로 가까워진 것 같았다.
나는 그들 사이가 결혼으로까지 발전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매청 시절인 1978년 8월엔가 원덕이가 나를 찾아와서는 “민정이와 결혼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박원덕은 어려움을 모르고 귀하게 자란 사람이라 나는 그 점이 걱정스러워 사실 머뭇거려졌다. 아무리 내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첫딸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심사숙고했으나, 아내는 그의 서글서글한 성격과 사람 됨됨이가 마음에 들었다면서 강력하게 후원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렇게 되어서 둘은 서로 부부가 되었는데, 서로 아끼며 사는 모습이 부모로서는 고맙기만 하다.
민정부부는 슬하에 딸만 둘을 두었다. 큰 외손녀 ‘재연(渽姸)’이는 제 엄마가 파리 유학중이던 80년 1월 출생해서, 외할머니인 아내가 파리에 가서 바구니에 담아 온 일화가 있다. 이제 재연이는 스물아홉인데, 중 2때 미국으로 가서 뉴욕에 소재하는 ‘프랫(Pratt)’대학, 대학원을 마쳤다.
둘째 외손녀인 ‘재욱(渽昱)’이는 90년 정월달에 낳았다. 그러니까 제 언니와 만 10년 차이가 난다. 재욱이는 중2 때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하다가 고2 때 일본으로 왔다. 현재는 고베에 소재하는 ‘인터네셔널’ 스쿨을 마치고 도쿄의 ‘상지(上智)’대학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고민 아닌 고민인 것은 제 엄마가 둘째 재욱이를 낳고나서 바로 그냥 살이 찌기 시작했는데, 나는 요새 민정이를 보노라면 어떻게 저런 딸을 낳았나 싶기도 해 슬몃 웃음이 터진다.
사위 박원덕은 현재 부친인 박기억 님으로부터 <DI>전자를 물려받아 경영을 하고 있다. 사위는 경영 수완이 있었던지 CEO를 맡은 후 <삼양옵틱스>와 <코디코>라는 2개 회사를 인수하는 등, 중소기업으로서는 그룹을 형성할 만큼 성장을 시켜나갔다.
삼양옵틱스는 국내는 유일하고 세계 5개 밖에 없는 휴대폰의 카메라 렌즈를 위시하여 각종 렌즈를 제작하는 회사였는데, 한일합작으로 마산수출자유지역 안에 설립된 주식회사 세이코(正光)라는 회사와 50대 50으로 합작설립 된 회사였다. 그 후 합작초년도인 2005년도에는 일본에 있는 본사를 10년 장기 분할 상환조건으로 인수하며 기염을 토했다.
<코디코>는 아이티 관련 회사로서 코스닥에 등록이 되어있고 상당히 탄탄한 회사였다. 사위는 이 회사를 인수하여 삼양옵틱스와 함께 경영을 잘 해 나갔다. 그런데 2007년 경영권을 양도하지 않으면 안 될 사정을 맞게 되었다. 그 이유는 양 회사의 대표이사로 있었던 이 모 씨가 갑자기 사망함으로써 맞은 경영권의 부재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위는 현재 주식회사 <융>과 함께 모 회사인 <D·I전자> 경영에만 전념하고 있다. 주식회사 융은 선친인 박기억 회장이 살아계실 때(2003년 작고했다) 설립된 회사로서 미국에 근거를 두고 사업을 하다가 한국으로 본사를 이전한 회사로서 교육용 프로그램을 판매하고 있는 회사이다. 현재 내가 타고 다니는 승용차도 융 소속으로 되어있던 것을 금년 3월 달에 내 앞으로 이전한 것이다.
둘째 민석이도 공교롭게 외국인인 호주 출신 여의사의 집도에 의해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당시 부산 메리놀 병원이었는데, 민석이는 누나가 태어난 지 정확히 만 3년 뒤인 1959년 12월 2일에 태어났다. 그 당시 제왕절개는 목숨을 건 수술이었다. 처가 식구들이 산모가 죽는다고 울고불고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병원에서는 산모가 워낙 약해서 이번만으로 끝내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만, 산모 본인이 셋까지는 낳겠다고 버티었다. 그 후부터는 병원에만 가면 "용감한 엄마가 나타났다"며 놀리곤 했었다. 훗날에 주위로부터, 송 국장은 선견지명이 있어 남매만 두었다고 찬사 아닌 찬사를 들었지만, 사실은 내가 선견지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상황이었음을 이 자리를 빌려 밝혀 둔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0점짜리 가장으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이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잘 자라 주었다는 점이다. 솔직히 나는 아이들 문제로 큰 갈등을 겪지 않고 그들의 성장기를 지켜보았던 행운의 아버지였다. 두 아이들 모두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