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각사에서 11년 동안이나 자리 잡고 있던 룸비니 학생회(내가 총장)가 운현궁 남쪽에 2층 회관을 짓고 독립하게 되었다. 내가 사재로 120만원, 기탁금으로 200만원, 이병철 씨가 50만원을 내어 지은 것인데 9월 11일에 개관식을 가졌다. 조계종 총무원장 이청담 스님이 룸비니 학생회를 특별 지도해 주셨는데 스님은 뜻밖에도 11월 15일에 입적하셨다. 피살설이 파다하게 퍼졌고 11월 19일에 종단장으로 모셨고 사리 8과가 나왔다.
그간 나는 지극히 건강하였으나 9월 25일에 북한산에 올랐을 때 위스키를 마시고 바위 위에서 잠을 잔 것이 원인이 되어 중풍에 걸렸다. 27일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에 가서 법학통론 강의를 끝내고 하단하려는 순간 왼쪽이 마비되어 보행이 힘들어진 것이다.
다음날 돈화문 앞에 있는 성제원을 찾아가 김정제 원장의 침술과 한약치료를 받고 두 달 후에는 다시 일요산행을 할 수 있게 회복되었다.
11월 19일에 열린 청담스님의 장례에도 참석하였는데 호명되어 나아가 분향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서 누구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왼쪽다리는 걷는데 아직 그리 완전한 편은 아니다.
8월 14일 판문점에서 남북적십자회담이 열렸다. 10월 26일 중공이 국부를 몰아내고 UN의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12월 6일 정부에서는 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12월 25일 대연각호텔 전소. 사상자 다수
반면에 나는 주로 비트켄스타인의 분석철학과 용수(Nagarjuna)의 중론을 공부하면서 글도 많이 썼다.
1) 4월 5일 법철학강의(증보판) 탈고. 박영사에서 출판. 2) 9월 27일 성대 논문집에 인간과 사이버네틱스 기계 발표. 3) 11월 5일 문학과 지성지에 인간과 오토마톤 발표
1972년(56세) 평교수로 있으면서 평범한 나날을 보냈지만 가족들 사이에서는 다소의 변화가 있었다. 작년에 그처럼 나를 괴롭히던 중풍은 간신히 퇴치되어 1월 3일에는 김정제 원장으로 부터 거의 완치의 판정을 받았다. 침은 더 맞지 않고 보약이나 당분간 먹으라는 지시가 있었다.
일요 산행을 계속하였으나 오를 때와 내려갈 때에는 정상적이지만 평지를 걸어가기가 매우 불편하였으므로 보행연습을 위하여 1월 13일부터는 입장료 200원을 내고 비원에 들어가 약 1시간씩 걸었다. 그리고 5월 5일에는 보약도 먹지 말라는 김 원장의 지시가 있었다. 이리하여 나는 그 무서운 중풍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나의 걸음걸이는 기운차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 병이 완치된 것만은 사실이다. 김정제 선생은 나의 평생의 은인이 되신 것이다.
3월 25일은 벨젤교수의 생일이자 정년퇴직하는 날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축전을 보냈고 그리고 영채는 직접 식전에 참석하였다. 고려대학에서 법철학을 강의를 하던 이항령 형이 홍익대학교 총장이 되어 떠나는 바람에 그 과목을 내가 맡아서 강의하게 되었다.
20년 만에 다시 고려대학교의 강단에 서게 되었기에 나는 정성을 다하여 강의하였다. 학생들도 열심히 강의를 들었다. 3월 17일에 시작하여 6월 16일에 끝났다. 고려대학교에서의 강의는 다음 해에 또 한 번 있었고 그리고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1967년부터 독일에 가 있던 영채가 식구들과 함께 6년 만에 돌아왔다. 웅이가 KIST에 취직이 되어 홍능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 영채 가족이 독일을 떠나자 혼자 남게 된 무궁화는 4월 5일 파리로 갔다. 그 곳에 사는 판화가 이성자 여사의 지도를 받기 위해서였다. 5개월 정도 공부하다가 9월 27일에 독일을 출발하여 불란서, 이탈리아 등 여러 곳을 구경하고 동경을 거쳐 10월 9일에 귀국하였다. 이리하여 독일에 가 있던 딸들은 모두 돌아온 것이다.
부모님께서는 매우 건강하셨고 4월 29일에는 쌍용사에 머물고 계시다가 다시 쌍문동 건의 집으로 돌아오셨다. 어머님은 그동안 수도승처럼 생활을 하신 덕분에 많이 좋아지셨고 아내도 감격하여 어머님을 더욱 극진히 모셨다.
지금까지 내가 쓴 책의 대부분은 박영사나 법문사에서 출판하였다. 그러나 나는 단독으로 출판사를 가지기로 결심하여 5월 30일자로 방문사라는 이름의 출판사 등록을 마쳤다(서울 가 1.774).
이리하여 우선 법문사에서 발행했던 형법 교과서를 가져 오기로 하여 5월 28일에 형법총론(5정판)의 개정판을, 그리고 8월 12일에는 형법각론(4정판)의 개정판을 출판하였다. 또 10월 27일에 제4공화국 헌법(소위 유신헌법)의 초안이 공고되자 10월 30일부터 나는 또 법학통론의 개필을 시작하여 11월 15일에 끝내고 곧 조판에 붙였다. 이것으로 가족의 생계는 큰 곤란이 없게 되었다.
7월 30일 중앙일보 주최의 연포해수욕 행사참가.
8월 27일 기창덕치과에서 한 달간 대대적인 치료를 하여 의치를 여러개 박았다.
10월 25일 경희가 딸을 낳았다. 역시 김재환씨에게 부탁하여 서림이라고 이름 지었다. 참으로 후덕하고 예쁘게 생겼다.
10월 31일 집을 담보로 국민은행에서 200만원을 대출받아 우리 집 들어오는 입구에 위치한 임씨의 집을 550만원에 샀다. 11월 14일에 영준의 이름으로 등기를 하였다. 내년 봄에 집을 새로 지을 예정이다.
나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서 25년이 넘도록 법학통론 강의를 해 왔었다. 그러나 너무 오래 맡아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후진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12월 2일 다음해부터는 강의를 맡지 않겠다고 노재봉 과주임에게 통고하였다. 이리하여 한때 명강의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던 나의 법학통론 강의는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1973년(57세) 1월4일 영채가 셋째 딸을 순산하여 일영이라고 이름 지었다. 1월 12일 옥채가 이화여고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