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의 고급장교 부족 이야기가 나오면 또 생각나는 분이 있는데, 바로 이재섭(李載燮) 씨라는 분이다. 일제시대에 일본 해군 소위로서 재임했던 유일한 한국인이 바로 이재섭 씨였는데, 이분과 나의 여러 가지 인연도 잊을 수가 없다.
해방 후에 그는 세관에서 근무했는데, 6·25 전쟁이 터지자 육군 중위로 복무했고, 전쟁 후에 다시 세관으로 복귀했다. 이때부터 나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이분은 고향이 전북 고창군 흥덕면으로 나의 고향과 지척이었던 관계로 서로에게 큰 의지가 된 것 같다.
내가 부산의 분석실장을 지낼 때 그분은 감정 2과장을 지냈는데, 옛날의 내 자리였다. 그리고 동시에 서울로 발령을 받았고, 내가 관세조정과장, 그분이 계장으로 나란히 한 부서에서 근무했고, 내가 국장 승진을 하면서 그분은 내 자리였던 관세조정과장을 맡게 되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그분은 나와는 각별한 관계와 교분을 나누었는데, 인간적으로 가슴 아프고 미안했던 경험도 가지고 있다.
그분은 1976년 9월에 서기관으로 퇴임을 하고 증권거래소 이사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 과정에서 본인의 의사가 존중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즉 본인은 공무원으로 마지막을 마치고 싶었는데 우리 공무원 사회의 여러 가지 역학관계로 인해 당시 장관께서 ‘공무원 서기관보다는 그쪽이 낫겠다’는 배려를 했고, 나는 그를 위해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혹시 생길 수도 있는 오해를 잘 이해해 주었고, 우리들은 그 후에도 계속 좋은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 그는 그쪽으로 옮기고 나서 오히려 더 큰 역량을 발휘했는데, 증권협회 상무 3년, 전국신용금고연합회 상무 6년 등 총 12년간의 재임 기간을 거쳤다. 그런 후 1997년 3월 25일에 작고했다.
이런 측면에서 김경식(金京植) 씨도 빼놓을 수가 없다. 전남 장흥이 고향으로 나보다 세 살 위인 그분은 업무 스타일도 나와 비슷했고, 또 내가 어려울 때 많은 충언과 고언을 아끼지 않았던 동료였다. 서울공대 기계과를 졸업했다.
참고로, 왜정 시절의 상급학교 진학은 중학교 4학년을 마치고 갈 수 있는 경우와, 5학년을 마치고 갈 수 있는 경우가 있었다. 중학 4학년을 마치면 대학 예과 1학년이 되고, 예과 3학년을 마친 후에 본과 3학년을 마쳐야 하니까 총 10년간의 수업 연한이 된다. 반면, 중학 5학년을 마치고 전문학교·고등상업학교·고등공업학교 등에 입학하여 3년간의 수업을 받아 총 8년간 수업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김경식 씨는 서울대학 36동창회이기도 한데, 당시는 전시여서 전시연합대학이라고 해서 입학 기수 3회부터 6회까지 한꺼번에 강의를 받았는데, 이들을 통틀어 ‘6동창회’라고 부른다. 대표적 인사로 박준규(朴浚圭), 김재순(金在淳), 조순(趙淳), 홍성철(洪性澈·전 청와대 비서) 씨 등이 있고, 고재청, 송삼석 씨도 여기에 속한다.
어쨌든 김경식 씨와 나와는 서로 많은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비고시(非考試) 출신으로서 재무부의 고위 관료인 이사관으로 퇴임했다. 비고시 출신의 대표적인 인사로는 조충훈 재무 차관, 김경식 씨, 그리고 나 정도였다. 그분은 중풍으로 쓰러져 요양 중에 있다가 2004년 말 작고했다.
세관 동기생 조충훈(趙忠勳) 씨는 나와는 아주 절친했는데, 그는 전주사범과 연세대를 마친 수재로 운동에도 만능이었고 또한 글씨도 명필이어서, 시험을 치를 때 글씨만 보고도 만점을 주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서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5·16 후에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실시한 연수에서 1등을 했기 때문에 특진을 했다. 그때까지는 나와 세관 동기생으로 같았는데 이후부터 한 걸음 앞서갔다. 그 후 그는 전매청장, 재무부 차관을 거친 후에 퇴임했다. 그리고 제일화재 사장으로 있다가, 고문으로 물러난 후인 1987년에 간암으로 아까운 생을 마쳤다.
이렇게 만난 친구들은 결혼도 비슷한 시기에 했다. 1955년에는 고재청 씨, 1956년에는 김헌 씨, 1957년에는 문기상 씨가 결혼을 했는데, 우연인지 부인들은 나이와 출신 학교가 똑같다. 부인들 모두가 이화여대 약학과 동기동창의 재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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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부동반으로 일본 나들이를 한 85회 친구들 / 좌로부터 문기상 씨 부인, 나, 고재청 전 국회부의장, 송삼석 모나미 회장, 그의 부인, 고재청 씨 부인, 김헌 씨 부인, 아내, 문기상 씨, 김헌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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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국발전과 더불어 국가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공무원 사회의 인재들이 이 나라 발전에 끼친 영향 또한 지대해졌다. 특별히 재무부 시절에 나는 훌륭한 역량을 지닌 많은 인사들을 만났다. 여기서 그들을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기억에 남는 면면들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1969년 초부터 1970년 중반, 즉 관세청이 태동되기 직전인 관세조정과장 시절, 그 1년여 전부터 우리들은 관세율표에 대한 전면적인 작업에 들어갔었다. 이때 기억나는 분이 당시 사무관인 계장들로 권태원(權泰元), 양성범(梁聖範), 김철진(金徹鎭), 곽병기(郭炳起) 씨 등이다.
1960년대 초반, 곽병기 씨는 박봉진(朴鳳珍) 씨와 함께 당시로서는 우리보다 선진국이었던 파키스탄으로 연수차 파견되었다. 그 후 1966년 곽병기 씨는 김철진 씨와 함께 GATT 가입 교섭단 일원으로 제네바에 파견된 바 있었다.
김철진 씨는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그 후로도 오랜 기간 해외에 근무했다. 그는 방콕 에스캅(ESCAP ; 아시아 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 주재관·스위스 제네바 주재관으로도 오랫동안 근무했는데 제네바 주재관으로 가기 전에 잠깐 동안 국내에서 근무할 때 그는 확실한 일솜씨로 나를 매료시켜, 내가 1970년에 관세청으로 승진되면서 나갈 때 후임 과장으로 그를 추천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기 주장이 강한 면도 있었다. 일부 업무에서는 나와 약간의 마찰도 있어서 한때 나의 심기가 불편했던 적도 있었지만, 워낙 인간 자체가 마음에 들어 장점에 단점이 가리워지는 그런 사나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