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들 중에는 학연·지연을 떠나 사회생활을 통해 만나서 지금까지 교분을 나누고 있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 대표적인 친구들은 전 국회부의장 고재청(高在淸), 우리나라 도자기 산업의 선구자인 목포 향남사 친제인 김헌(金憲), 상공부 출신인 문기상(文基祥) 씨, 현 모나미 회장 송삼석(宋三錫) 씨 등이다.
이들은 부산세관 시절인 1952년에 같이 하숙을 했던 송삼석 씨를 통해 알게 된 지우(知友)들이다. 당시 송삼석 씨는 우리나라 10대 무역회사 중의 하나였던 삼흥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과 같이 어울렸던 나의 학창 시절 친구들로는 해군 참모총장을 지낸 당시 해군 대령 김규섭(金圭燮) 씨, 공군 중령으로 예편한 당시 정영진(丁永鎭) 공군 소령 등이 있다. 말하자면 우리들은 민간과 군이 합한 순수 친목단체로, 정말 의기투합했다.
내가 서울로 올라온 1954년부터 1956년 즈음까지 우리들은 정말 거의 날마다 만나다시피 했다. 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돈독한 교분들을 나누었다. 우리들은 농담으로 ‘일주일에 8일간 술을 마신다’는 말을 나눌 정도로 함께 어울려 다녔다. 정말 젊음의 패기와, 세상 무서운 줄 몰랐던 의기로 똘똘 뭉쳤던 시절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당시 나만 유부남이었고, 나머지 친구들은 전부 총각이었다.
지금의 서울시청 동쪽 담쪽에 초가집으로 된 ‘용금옥’이라는 설렁탕집이 있었고 그 맨 끝쪽에 ‘호박당’이라는 제과점이 있었는데, 그곳은 친구 임창섭이 경영하던 곳이었다. 지금의 서울시청 옆에 있는 부산은행 자리가 그곳이었다. 우리들은 이곳에서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만났다.
당시 고재청은 서울상대를 졸업하고 생사조합에 있었는데, 호인이었고 호방했다. 나는 그때 그의 정치적 기질과 역량으로 보아 평범한 역정을 보낼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는 1970년대 초에 생사수출조합 전무를 박차고 나와서 정계에 진출했다. 야당 원내총무를 거쳐 국회부의장까지 역임했다.
당시 송삼석 씨는 잘 나갔던 삼흥사가 무너지는 통에 풍화산업이라는 곳에 재취직하고 있었다. 풍화산업은 미국에서 중고 모자를 수입해 많은 돈을 벌었던 회사였다. 그는 1957년에 지금의 모나미의 전신인 광신산업에 입사해 오늘의 모나미를 만들어냈다.
나는 송삼석 씨가 회장에 오르기까지 옆에서 지켜본 친구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1973년 12월 7일, 재무부가 웬만한 우량기업은 적극적으로 자본시장에 상장할 것을 권유하는 내용의 특별조치를 내렸을 때이다. 당시 송삼석 씨는 모나미의 전무로 있을 때인데, 나는 모나미화학을 상장하는 것이 국가시책에도 맞고, 회사로서도 특별조치에 한 몫 끼는 것이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송삼석 씨에게 적극 권유했다. 송삼석 씨도 상장을 강력히 원했고, 나는 <증권보험과>에 안내하여 도와줬다.
모나미 송삼석 회장에 대해서는 웃지 못 할 일이 있다. 그와 나는 삼례초등학교 동창으로 여태껏 알고 지내 왔으나, 최근 우연한 기회에 따져 보니 그가 나의 1년 선배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그 후 나를 만날 때마다 “선배 대접을 해달라, 그 동안 친구로 알고 지낸 것만 해도 억울하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 그의 집안은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으로 5대째 내려오고 있다.
그의 장형인 송정석(宋正錫) 님은 세브란스 의대를 졸업하고 의대 교수로 정년퇴임한 후, 일본의 무의촌 섬에서 의술을 펼치며 인생의 마지막에 아름다운 봉사를 하고 있다.
김헌(金憲)은 전 국회의장이었던 정래혁 씨의 부관이었는데, 1955년에 중위로 예편했다. 그 후 그는 삼성물산 상무를 역임했고, 지금은 도자기 관련 인쇄업인 향남 특수 인쇄(주)를 경영하고 있다.
그리고 문기상(文基祥) 씨는 상공부에 근무하고 있었다. 상공부 상역국장, 차관보를 거쳐서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을 끝으로 1980년부터는 변리사로 활동하고 있다. 친구 김규섭(金圭燮) 예비역 해군대장을 생각할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한다. 그를 보면, 너무 일찍 핀 꽃은 일찍 진다는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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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리공업 친구들과 / 김규섭 예비역 해군 대장은 이리공업 시절 기숙사 한방에서 같이 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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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해사 2기 출신으로, 가장 앞서나가 해군참모총장까지 역임했다. 너무 빠른 승진으로 인해 40대에 예편을 해야 했고, 한국고압벽돌 초대사장을 역임했다. 15년 후쯤에는 재향군인회장을 했고, 지금은 야인 생활을 하고 있다.
김규섭 씨는 이리공업 시절에 같은 방에서 기숙사 생활을 한 사람으로, 1948년 9월에 창군과 함께 해사(海士)로 진학했다. 그는 해사 2기였는데, 당시 고등해원양성소 출신을 1기로 쳤기 때문에, 2기는 비록 교육 연한은 짧았지만 정규교육을 받은 첫 기가 되기도 한다. 그는 무척 논리적이었고, 우수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해군에서 그의 역량은 워낙 뛰어나서, 그는 선(先)계급주의에 의해 동기생들보다 두 계급이 높았다. 예를 들면, 실제 계급은 대위이면서 중령 계급장을 붙였는데, 당시 해군에 고급장교가 부족한 탓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