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곧 대통령 선거전에 돌입, 드골파(派)의 영수격인 샤방 델마스(Jacques Chaban Delmas) 전 수상에 대항하여 중도우파의 영수인 지스카르 데스탱이 출마하고, 사회당에서는 프랑수아 미테랑(François Mitterrand)이 출마하였다. 그런데 드골파 소속인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내무장관이 지스카르 데스탱을 지지하고 나서, 결국 지스카르 데스탱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시라크는 수상에 임명되었다.
이렇게 성립된 우익 정부는 한국과의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발전시키는 친한(親韓) 정책을 계속하였다. 따라서 정치면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므로, 나는 다만 경제 관계 발전, 특히 수출 확대에 주력하는 동시에 원자력 및 국방 분야에서의 협력도 모색하였다.
프랑스 정계와 민간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의 참전동지회(Anciens Combattants)가 있었는데, 그 회장인 비비엥(Robert André ViVien) 하원의원은 드골파 소속 의원으로 친한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나는 이들과 전 주한대사 샹바르(Robert Chambard)를 주축으로 한 <한불친선협회>를 통하여 한국에 대한 이해와 친선을 돕는 여러 가지 문화행사를 개최하였다.
또한 마르세이유(Marseille), 스트라스부르그(Strasbourg), 루앙(Rouen), 리옹(Lyon)에 명예영사를 임명하여 지방과의 유대를 강화하였다. 루앙의 명예영사로는 교포 의사 김양희 씨를 임명하였다. 낭트(Nantes)대학 교수인 민선식 박사는 아주공과대학과의 협력 사업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파리 6대학의 이옥 교수는 한국어과를 맡아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사업을 시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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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임장 제정을 마치고 퐁피두 대통령과 / 이 사진이 전 세계에 타전되며 퐁피두 대통령의 건재를 알렸으나 그 열흘 후에 서거하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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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관계로는 문공부에서 공보관을 대사관에 파견하고 있다가 후에 문화공보원을 설치하여 별도의 사무실을 차려 나갔다. 한국은행과 외환은행 그리고 무역진흥공사가 사무실을 두고 금용과 수출진흥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대기업의 종합상사들도 지점을 두고 활발히 시장개척을 하고 있었다. 또한 파리는 서구라파의 중심이므로 통신사와 주요 신문사가 모두 특파원을 상주시키고 있었다.
일반 교포로는 두 개의 음식점 경영 이외에는 이렇다 할 사업을 하는 사람이 없었고, 1974년 현재로 약 320여 명의 교포 대부분이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프랑스는 미국과는 달리 학교에 내는 수업료가 없기 때문에 학비는 그리 많이 드는 편이 아니었으나 숙식에 필요한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고생하는 학생들이 많았고, 그 중에는 북한의 유혹에 빠져 북한공작원에 포섭되는 자도 있어서 하나의 문제가 되고 있었다.
내가 파리로 출발하기 직전에 부임 인사차 박 대통령을 뵈었을 때, 박 대통령은 아무런 설명 없이 일금 5만 불을 주시었다. 나는 감사히 받아들고 물러 나왔으나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지 하나의 심적 부담이 되었다.
나는 이 정보비를 기금으로 하여 그 이자를 가지고 재불 유학생 중 성적이 우수한 자로서 학비에 곤란을 겪고 있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결심하고 대사관내에 장학위원회를 구성, 이 일을 담당케 하였다.
주불대사가 겸임하여 담당하는 나라가 둘이 있다. 포르투갈(Portugal)과 차드(Chad)가 그 나라인데, 나는 먼저 포르투갈 대사 신임장을 제정하기 위하여 1974년 4월 24일 리스본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인 25일 새벽, 요란한 총소리에 잠이 깨어 일어나 보니, 호텔의 다른 손님들도 일어나 로비에서 웅성웅성 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니 쿠데타가 났다고 한다. 공항도 폐쇄되고 거리는 통행금지령이 내려 아무도 나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예정된 신임장 제정은 어떻게 될 것인가? 라디오 방송을 들으니 스피놀라(Gen. de Spinola) 장군이 지휘하는 육군부대가 대통령인 토마스 제독(Admiral Thomas)의 정부를 전복시키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한다.
동행한 현희강(玄熙剛) 서기관이 간신히 알아본 바에 의하면 신임장 제정이고 뭐고 외무부는 완전히 무정부 상태라고 하는 것이었다. 사태가 진정되어 질서와 정부 기능이 회복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데다가, 설령 빨리 질서가 잡힌다 하더라도 내가 가지고 온 신임장은 토마스 대통령 앞으로 작성된 것이므로 새 대통령 앞으로 신임장을 다시 써 가지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파리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공항은 계속 폐쇄중이며 언제 열릴지 기약할 수 없었으므로 우리는 철도를 이용하여 우선 마드리드로 가기로 작정하였다. 마침 운 좋게 열차표 두 장을 구할 수 있어서, 다음날 기차를 타고 이베리아 반도를 횡단하며 이베리아 반도의 평화로운 전원풍경을 감상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