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콘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나는 ‘미국에 남을까, 귀국할까’ 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미국에 남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런데 약혼자 정온모가 브레이크를 걸었다. 한국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내가 가지 않으면 혼자라도 가겠으며, 결혼도 재고하겠다며 강력히 나의 귀국을 원했다.
약혼자 정온모가 그렇게 맘을 먹었던 것은 내 나라 내 땅에서 활동하고 사는 것을 원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당시 이화여대 총장이었던 김활란(金活蘭ㆍ1899-1970) 선생의 당부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유학한 한국 학생들은 프로그램 과정이 다 끝나고도 그대로 미국에 눌러 앉는 경우가 많았다. 또 당시 자유당 정권의 독선으로 4·19 의거가 일어나는 등 시국이 혼란해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귀국을 꺼리는 풍조가 있었다. 그래서 김활란 총장은 정온모에게 “너는 프로그램이 끝나면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며 특별 당부까지 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약혼자의 뜻에 따라 당초의 뜻을 바꾸어 귀국하기로 했다. 귀국은 각자했다. 정온모는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비행기 편으로 귀국할 수 있었지만, 나는 <한미재단>에서 주선해 준 미군수송선 <브렛켄릿지(Breckenridge)>호로 귀국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여러 가지 사정상 달포 후에 있을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귀국해야 했다. 졸업식에 참석하면 한국으로 떠나는 배를 또 몇 달여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약혼자 정온모와의 일정을 맞출 수 없었고, 귀국 후의 결혼 계획도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학위수여식에 참석하지 못해 지금도 나는 박사학위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당시 유학생들은 지금과 달리 비싼 비행기를 탈 사정이 못되었고, 대개 한미재단에서 무임으로 제공해주는 선박을 많이 이용했다. 한미재단에 편지를 보내 귀국 신청을 하면 ‘언제, 미국의 어느 항구로 오라’는 통지가 왔다.
우리는 귀국 전 워싱턴 D.C.로 가서 계봉혁 선배의 차를 타고 시내는 물론, 주변의 명소를 구경하며 미국유학생활의 마지막 며칠을 즐겁게 지냈다. 그 후 나는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오클랜드 항을 출발, 샌디에이고, 일본의 요코하마, 오키나와를 경유해 한 달여 만에 인천항을 통해 귀국했다. 출국 6년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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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학에서 돌아올 때 타고 온 브렛켄릿지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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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여가 걸려 10월 4일 인천항에 도착하니 어머니와 형님, 그리고 동창생 등 친구들이 대거 마중을 나와 있었다. 또 먼저 도착한 약혼녀 정온모도 마중을 나와 우리는 한 달여 만에 만나 반갑게 포옹했다. 어머니는 먼 이국땅에 막내아들을 보내놓고 꽤 걱정을 하셨던 모양이었다. 내 손을 붙잡고 연신 장하다며 눈물을 훔치셨다.
당시 내가 귀국할 때 남자 여섯, 여자 넷으로 열 명의 미국 유학생들이 같이 들어왔다. 그 중에 나 외에 또 한 명의 박사학위 취득자가 있었는데, 나는 그와 함께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 박사학위가 그만큼 희소성이 있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유학을 떠날 때도 그랬지만 귀국하자 인천고 동창들이 인천 <공화춘(共和春)>이라는 중국요리집에서 성대하게 환영연회를 베풀어 주었는데,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